뱀에게는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많지만, 인간들은 틀렸다. 나는 생각하고 사유할 수 있는 존재다. 그건 내가 다른 뱀들과는 색이 달라서일수도 있고, 나를 키워 온 인간이 다른 인간들보다 똑똑해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건 나는 내가 사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는 고민이 있다.
먹이로 먹는 쥐의 맛 때문도 아니고 탈피 때문도 아니고 온도 문제도 아니다.
아빠에 대한 문제다. (주인은 자신을 '아빠'라는 호칭으로 칭해서 나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뱀은 번식 이후에 수컷이 새끼를 키우지 않으므로 저 호칭으로 불러주기는 하지만 내가 이해할 일은 없다. 뱀은 오직 어머니만을 숭배한다. 낳고 키우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일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앨런은 '엄마'라고 호칭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아빠라니까 뭐, 그러려니 한다.)
인간들은 아무래도 수컷은 알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바로 어제 저녁의 일인데, 아빠와 아빠의 애인… 즉 다른 수컷이 집에 들어와서 교미를 시작했다.
이 다른 수컷은 아빠보다 제법 체온이 높아서 종종 나를 만져 주면 달라붙어 있기 좋았다.
아빠가 처음 이 자를 소개했을 때, 나는 그의 눈을 제법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반짝거리는 눈이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어쨌든 아빠가 집까지 데려와서 인간을 소개하는 일은 제법 드물었으므로 나는 그를 기억해두기로 했다. 몇 달 안 지나서 몇 번 더 왔고 나는 아빠와 그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인간들이 ‘애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수컷이 없을 때 하는 말을 들어 보면(수컷 이름은 유진이라 했으므로 앞으로 나도 그렇게 칭하겠다) 나와 색도 비슷한 모양이다. 아빠는 “너처럼 하얗고, 너처럼 예뻐, 유노.”라고 했다. 아무래도 아빠는 취향이 확고한 듯하다. 그럼 유진도 나처럼 쥐를 먹을까? 아빠가 최근 유진덕에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내 쥐를 한 마리쯤 양보하는 것은 상관없다.
아무튼 아빠는 괜히 나를 키우는 것이 아닌지 뱀마냥 교미하기 시작했다. 유진은 뱀처럼 좆이 두 개는 아니었지만 한 번 박아 놓고 빼지 않는 거라던가… 내가 쥐를 절반 이상 소화할 동안 붙어먹는 거라던가 제법 뱀 수컷다운 기질이 충분했다. 아빠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아빠도 나름 여러 번 유진과 교미하는 것을 보면 유진은 꽤나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인 듯 하다. 체온도 뜨겁고 덩치도 크고, 아빠 말을 들어 보면 얼굴도 꽤 괜찮은 모양이니 그의 새끼를 낳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렇게 교접하는 것이 한 번 있었던 일도 아니고 여러 번 있는 일이 되니 고민될 수밖에. 아무래도 인간들은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는 알이 생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뱀은 한 번만 교미해도 5개월 정도는 정자가 살아있기에, 더 안 해도 된다. 그야 그렇게 붙어먹는 것은 열량 소모가 심하다. 쥐를 몇 마리나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불필요한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하는 걸 보면 알을 낳기 위해서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는 알이 생길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최근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TV에서 알을 낳는 동물들의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까지 리모컨의 버튼을 몸으로 꾹꾹 눌러 댔고, 아빠의 몸에 있다가 책에서 그런 삽화가 보이면 기어서 올라갔다. 한 때는 유진과 아빠가 또 교접하기에 집을 탈출해서 침대로 기어서 올라갔다. 뱀은 수컷이 암컷을 묶듯이 휘감고 제압하는 경향이 있는데 둘도 딱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뱀은 인간처럼, 두성으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쉿쉿거려봤자 그들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유노, 내가 밥을 안 줬던가? 뭐 불만이라도 있어?” 하고 아빠가 당황해서 온도 조절계며 이것저것을 살펴봤다.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라고 생각한 것이 며칠 전 일인데, 오늘 아빠와 유진이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또 교미하는 줄 알았는데, 아빠가 알을…… 낳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데구르르, 툭.
굴러가는 알들이 아까워서 내가 물어다가 모아 두고 싶었다.
참 잘된 일이다. 인간들은 체온이 따뜻하니까 품어서 부화시킬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애들한테 나는 '누나'가 될까? 아빠와 유진 모두 꽤 괜찮은 인간들이니 분명 아이들도 귀여울 것이다.
부화할 때 내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주변을 지켜볼 것이다. 이상한 인간이나 동물, 고양이, 쥐새끼, 새 등등 알을 노리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저 알 중에서 세 개 정도만 부화해도 기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먹이를 먹는 방법을 알려 줘야지.
-유노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