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남자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딸깍, 고풍스러운 은색 회중시계의 뚜껑을 여닫았다. 길고 까만 코트가 까마귀 날개처럼 바람에 조금씩 나부꼈다. 남자는 평범한 풍경에 녹아내리지 않았다. 흰 백지에 쏟아진 검은 물감처럼 이질적이었다.
저 아저씨가 나한테 오면 재밌을 텐데.
매그너스는 그네를 타며 생각했다. 왠지 나한테 올 것 같아. 그리고 나한테 와서 그 마법 학교 얘기를 더 해주는 거야. 네 개의 기숙사랑, 금지된 숲, 입학시험으로 잡는다던 트롤에 관한 이야기…….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때, 남자는 매그너스의 앞에 있었다. 어쩐지 그는 몸에 고요함을 두르고 있었다.
남자에게서는 차가운 냄새가 났다. 겨울을 몸에 두른 것처럼. 매그너스는 그네에서 내려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도 마법사죠!
남자는 놀라지 않았다. 장난치지 말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매그너스를 기다려 온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어. 매그너스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쭈그리고 앉았다. 눈높이를 맞춘 남자가 매그너스의 눈을 그저 바라보았다. 한쪽은 연두색 사탕 같고, 한 쪽은 먹구름 같은 눈동자로.
이름이 뭐니?
남자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고작 그 말만 내뱉었다. 매그너스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매그너스 란차우! 내 이름은 로마의 황제한테서 따 왔대요! 어때요, 짱 멋지죠? 그러니까 나도 위대한 사람이 될 거에요! 아저씨 이름은요?
……글쎄, 뭘까.
난 이름 알려 줬는데! 치사해.
그게 아냐,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이름을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지 내 이름을 추측해 보는 것도 재밌겠지.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매그너스는 그저 입술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름엔 겨울Winter같은 게 들어갈 것 같은데요. 아니면 까마귀Raven이라던가.
……그건 내가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니?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구나. (에잉! 아쉬워.) 그래, 매그너스. 너도 마법사겠지?
남자가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매그너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엉이가 편지를 물고 날아왔어요. 엄마가 슬쩍 말해 줬었긴 한데. 그러니까 난, 이제 곧 호기와티(사실 정확한 명칭을 알았지만 매그너스는 이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에 가는 거에요. 아저씨도 나왔어요? 호그와티?
그래. 그랬지. 무척이나 좋은 곳이야. 어린 마법사들이 꼭 들어가야 하지. 너도 거기서 많은 걸 배우면 좋겠구나.
목을 가다듬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넌 어떤 마법사가 되고 싶니?
매그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매그너스 란차우는 그런 어려운 질문을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어린이였다.
난 착하고 멋지고 좋은 마법사가 될 거에요! 힘든 사람들을 돕는. 그럼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마구마구 치는 거죠. 매그너스 짱 멋지다~!
매그너스가 춤을 추며 박수치는 흉내를 내 대자, 남자는 조금 웃었다. 크게 웃지 않았다. 외삼촌들은 푸하하 웃어 주는데. 신기한 아저씨야.
남자는 어느새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매그너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애정이 느껴졌다. 이런, 내가 또 어른들에게 귀여움받나 보다. 매그너스는 처음 보는 아저씨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이기도 했다. 한참 매그너스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란차우. 너는…… 보아하니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구나. (엥! 어떻게 알았지?) 다 아는 수가 있지. 난 점술에 능하거든. ……호그와트에 가면, 그것만 조심하면 되겠어. 호기심 때문에 허투루,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네 손해니까. ……나머지는, 음. 네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면 충분히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언제나 주변을 소중히 하고, 무엇보다…… 네 스스로를 돌보는 걸 잊지 마렴.
매그너스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중간쯤 듣다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나갔겠지만, 남자의 잔소리는 어쩐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애정이 섞여 있어서? 그것보다는 이 잔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가치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남자가 살짝 꺼슬꺼슬한 매그너스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그만두었다. 손가락이 잠깐 굳었다가 거두어진다.
누가 뭐래도 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건, 너 자신이야. 그걸 잊지 마. 흔들리지 마.
하지만 난 나도 소중하지만, 우리 가족이랑, 내 친구들이랑, 그리고, 그리고 미치도 소중한걸요! 난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단순한 어린이 매그너스가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면 길고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매그너스는 이렇게 느끼는 바를 본능적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그런 대답이여도, 남자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꽤 키가 커서, 내려다보니 꽤 위압감이 있어 보였다.
하하, 그래……. 넌 정말 변함이 없구나. 요 장난꾸러기야. 어른이 말하면 그냥 듣는 거야.
내가 장난꾸러기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매그너스가 물었다. 당연한 사실을 직면당했기에 매그너스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점술에 능하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건 점술까지 갈 필요도 없지. 네 얼굴만 봐도 한눈에, 척, 단박에 알겠으니까.
에엥~! 그런 게 어딨어요!
남자가 다시 미소지었다. 이렇게 웃으니, 더 잘생긴 얼굴이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매그너스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공부나 열심히 해! 이 장난꾸러기야.
매그너스가 그건 싫다고 대답하려 했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겨울 냄새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잔소리는 따뜻했지. 신기한 아저씨였어.
매그너스는 남자가 사라진 허공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뛰어나갔다.
엄마한테 얘기해 줘야지! 동생들한테도!
하지만 어쩌면……
금방 까먹을지도 모른다.
다시 떠올리게 되는 건……
이십 년쯤 뒤에.
겨울 냄새가 나는
올리버 노스를 앞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