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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햄버거의 모험

햄-버거의 모험



아, 아. 본부 들리는가?


나는 아주 치욕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소. 지구라는 행성에 불시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필 이 거대 우주 햄스터(스패햄SPAce-HAMster)중에서도 소형인 나이기에 이 지구를 정복하고 있는 토착 종들보다 작다는 것이 불행이오.


아무튼 이 지구라는 행성도 전 우주를 강타한 게이트와 초능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오. 나는 그 중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 몬스터를 처리하는 군사집단, 센티넬? 에스퍼?를 관리하는 협회라는 곳에 잠입했소.


다행스럽게도 내 몸색은 인간들의 가시광선 아래에서 그림자와 구분될 수 없어 보이나 보오. 숨기 용이했소. 나에게는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가구들을 지나, 인간들의 발을 피해 도도도도 달리며 최대한 정보를 수집했소.
이 지구의 에스퍼들 또한 폭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인간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낸 모양이었소. 우리 스패햄에게도 쓸 만한 정보일 것 같아서 설명해보러 하오. (치욕스러운 일들은 조금 있다가 말하겠소.)


인간들은 초능력자, 일반 인간 그리고 가이드라는 것으로 구별되는 모양이오. 이 가이드라는 것들은 겉보기에는 일반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딱 하나 초능력자들의 폭주도를 접촉으로 낮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오. 그래서인지 초능력자와 만지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꽤나 희귀해 보였소. 원래도 스킨쉽은 인간들 사이에서 친밀도를 공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행위인데 에스퍼에게는 그것이 폭주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오.
정보는 여기까지요.


본부에게는 슬픈 소식이리라. 그 다음 내가 붙잡혀 버리고 말았소.
땅콩이나 씨앗 같은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푹신한 인간들의 의자에까지 올라갔는데, 아뿔싸. 어떤 인간이 나를 잡아버린 것이오.


노아 그레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이드가 해야 할 필수 직무들을 한 뒤, 10시 반 쯔음 잠시 쉬기 위해서 가이드 휴게실로 간 상태였다. 커피는 이미 아침 일찍 마셨으니까 또 마시기는 좀 그렇고, 캐모마일 티나 한 잔 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따뜻한 차를 텀블러에 담아 한 손에 들고, 노아는 소파에 앉았다.


"후우..."


손에 무언가 뭉클, 부드럽고, 말랑한 것이 쥐어졌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노아는 그것을 쥐어 들어올렸다. 쿠션이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쮝!"

"?!!?!"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검정색 두더쥐.. 아니 생쥐.. 아니 복슬복슬하고 꼬리가 짧으니 햄스터. 햄스터였다!!!


햄스터는 손아귀에서 발광하다가 노아와 눈이 마주치자 얌전해졌다. 노아는 잠시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햄스터?"


햄스터가 꾹꾸구ㅜㄲㄲ국 대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노아는 소파에 그것을 얌전히 올려둔 뒤 상자를 찾았다. 담아야 한다!


"햄버거입니다."


제논 러셀은 노아의 손에 들린 상자를 보았다. 톱밥이 넉넉하게 깔린 상자에는 누가 봐도 햄버거가 아닌 햄스터가 담겨 있었다.
저녁으로 햄버거를 사오랬지 햄스터를 사오라고 하진 않았는데. 제논 러셀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필 이름도 햄버거야?


"장난해? 이건 쥐새끼잖아."

"쥐가 아니라 햄스터입니다. 주인이 없더군요. 그래서 일단 제가 임시로.."

"무슨 소릴 하는거야? 당장 다른 놈한테 갖다 주지 못해? 이런 쥐새끼를 키운다고? 색도 시꺼매서 시궁쥐인지 두더쥐인지 더럽잖아."


제논의 윽박에 톱밥 속을 파고들던 햄스터가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제논이 이글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햄스터를 노려봤다.


"야, 뭘 봐."


꾹꾹. 꾸륵.
기분 나쁜 듯이 햄스터는 톱밥 속으로 머리를 파고들어 짧뚱하고 핑크색 꼬리가 달려 있는 털뭉치-궁뎅이만 내놓았다. 허! 좆만한게. 그럼 지금 노아가 이걸 키운단 건가? 불쾌해진 제논이 노아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아의 고집 또한 상당했다....


검은색이라 제논을 닮아서 더 정이 갔습니다. 제가 다 책임질 겁니다.

이 좆만한게 뭘 나를 닮았다는 거야?

....제논...

아니 진짜 그렇잖아, 이딴 건 내가 햄버거 패티로 해도 간에 기별도, 야, 노아, 노아! 어딜 가!


인간의 집에 억류된 지도 벌써 한 달 째. 금방 도망 나오기 위해서 두 볼을 가득 채우던 때도 있었으나 나는 적응했소. 본부는 응답하라. 다행이도 씨앗과 곡물류 같은 식사도 제 끼니 나오고, 물도 넉넉하며, 오락 시설(쳇바퀴)도 넉넉하게 있는 집이오. 스패햄 기준 대저택에 가까울 정도로 큰 집이라서 돌아간다면 이런 저택을 마련하고 싶소.


인간은 나를 여기 가둬 놓고 구경하는 것이 취미인 듯 하오. 나를 딱히 터치하지 않지만, 가끔 나와 같은 머리색의 인간이 찾아와서 나를 노려보곤 하오. 그럼 난 가만히 서서 그 자의 몸에 흐르는 일렉트릭-센티넬-전류를 확인하는데 그 자는 내가 쫄았다고 생각하는지 코웃음을 치며 가 버리곤 하오.
그리고 나한테 자꾸 좆만하다고 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칭찬인 것 같소.

(주:햄스터의 불알은..)

다만 인간의 주식도 해바라기씨와 땅콩류인 것인지 자꾸 내가 보는 앞에서 해바라기씨와 땅콩을 탈탈 털어넣곤 하오. 그 막대먹은 고문에 나는 입을 벌리고 얼어붙는데, 그러면 그 인간은 의기양양 돌아서곤 하오. 대관절 왜 그러는지 이해는 되지 않소. 인간의 에스퍼들은 어쩌면 가학심이 있는지도 모르오.


다행스럽게도 가이드라고 하는 나의 주 억류자, 녹색 눈의 인간은 나를 건드리지 않고 밥도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나, 그 때문인지 가끔은 에스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듯 하오. 나에게 밥을 주다 말고 에스퍼가 목을 깨무는데도 얌전히 있는 것이 먹히는 초식동물과 비슷해서 내가 다 분했소이다.


어쨌든 나는 이곳에 억류되어 있지만 최근 나가는 법을 배웠소. 나가서 저 못된 에스퍼의 가슴을 한 번 깨물기도 했소. (사실 나는 그것이 가슴인 지 몰랐소. 아니, 분홍빛의 무언가가 오르락내리락하기에 나는 당연히 딸기거나 수박인 줄...) 깨물었을 때 화들짝 놀라기에 나는 뿌듯했소이다. 그 뒤 우악스러운 손길로 나를 다시 가두어 놓고 "이 새끼가 미쳤나!" 고 했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조금 떨었소.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하소연하더니 그 녹색 눈의 인간이 달래 주고 나 대신 벌을 받았소. (그 일련의 모든 육체적 교합은 벌이라 해야 마땅하오.) 아무래도 에스퍼의 폭주도를 낮추기 위해서 가이드의 고행이 예상되는 바, 스패햄 종족은 조금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마지막으로 나는 탈출하는 방법을 찾았으니 일여년 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소. 어쩌면 불필요한 껍데기를 놔두고 갈 수도 있겠지. 스패햄 행성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모든 일을 정리한 일지를 발표해 보겠소. 이 모든 것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둔 나의 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