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이가 죽었다. 해양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탄 선박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였다.
고래는 그렇게 심해로 가라앉았다. 시체도 찾지 못했다.
언젠가 그 시체가 바닷가로 밀려올 일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란은 멍하니 식탁을 닦았다.
이미 장례식까지 다 끝낸 뒤였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봐야 했다.
네, 네. 태평이가요? 제 남편이요? 그러니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요? 아뇨, 그 이는 죽을 리가 없어요. 하다못해 바다에서 죽을 일은 없단 말이에요. 그 이는 고래인데, 수영을 좋아하는 고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바다에 빠져 죽는 기분을 느끼는 건 주란이었다.
언제나, 늘. 정해진 것처럼 그랬다.
주란에게 있어서 태평을 만나기 전까지 어둠이란, 우울이란 비유하자면 바다의 심해와 가장 비슷했다. 수영을 못 하는 주란이 어두운 바다에 가라앉아 빠져 죽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면 고래가 다가와 숨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어도 고래는 와 주지 않았다. 그 고래가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렸으니까. 다른 생명체들의 먹잇감이 되어 바다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주란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태평아, 나는. 난 숨을 쉴 수가 없어. 네가 있어야 해.
언젠가 태평이 말했다-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걸 주는 자애로운 존재라고. 그러나 그 말을 주란은 전면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바다는 잔인한 존재다.
안드로이드 제작 서비스 광고를 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유튜브 광고는 제법 실제 사람같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를 소개했다. 사람과 같은 체온, 사람 같은 느낌의 피부, 살아있던 시절의 영상과 기록을 넘기면 양자 두뇌가 만들어낸 AI가 살아있던 그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했다.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더욱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았고, 옵션이 많아질수록 더욱 실제 사람 같아진다고 했다.
주란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태평이 필요했다. 주란은 시체조차 받지 못했다. 그것마저 바다에 넘겨줬다.
바다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라더니, 거짓말이야. 다른 모든 것을 주지 않아도 돼. 태평이를 돌려 줘.
그러니 가짜라도 좋으니까 지금 당장. 태평이를.
또 다시 길게만 느껴지는 무호흡의 시간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 때마다 주란은 태평이 자신에게 호흡을 다시 되돌려 줄 미래를 그렸다. 그래도 숨은 쉴 수 없었다.
두 달 정도가 지나 집에 거대한 택배가 도착했다. 안드로이드 회사의 전용 직원이 수레를 끌고 와서 택배를 집 거실에다가 내려놓았다.
종이 상자를 벗기자 그 안에는 거대하고 길쭉한 타원형의 수조가 있었다. 그 안은 푸른색의, 마치 자동차의 부동액처럼 보이기도 하는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기서 충전을 시키실 수 있고, 초기 상태에서는 여기에 누워 있습니다. 정보는 오기 전에 모두 백업된 상태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문의 사항이 있으면 여기로 연락해 주시고……."
수조는 투명했지만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인지 표면에 서리가 끼어 있었다. 주란은 한 손으로 그것을 슥 밀어 없앴다.
순간 주란은 숨을 멈췄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푸른 액체 안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건 정말 태평이었다. 그가 알고 있던 그대로의 태평이었다. 똑같은 얼굴이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보였다.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얼굴은 언젠가 그들이 바다에 놀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눈을 감고 일광욕을 즐기던 그 모습 같았다.
이게 태평의 모습을 흉내 낸 기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란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속삭였다.
"태평아……."
그리고 그 말이 기동어가 된 것처럼 태평이 서서히 눈을 떴다. 새파란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본다. 유리로 만들어진 것일 분명한 가짜 눈동자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 마냥 보였다.
기계 고래는 유리 밖의 주란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언제나 보여줬던, 요 몇 달 간 주란이 늘 그리워하던, 태연하고 여유작작한 미소였다.
‘주란아.’
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입모양이 움직였다. 그러나 기포는 올라오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숨을 쉬지 않으니까.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그가 대면하고 있는 것이 기계라는 실감이 났다. 다시 태평이 없이 심해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주란은 차마 그 안드로이드에게, 태평이가 돌아온다면 되돌려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서 와, 태평아.” 라는 그 말을.
수조 안에서 나온 안드로이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어색한 점도 없이, 완벽하게 이태평이라는 존재로 보였다. 예컨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란아.” 하고― 다정한 어투로 저와 태평이 사이에서만 불리던 애칭을 입에 담으며 천천히 주란의 뺨을 쓰다듬는 것이 그랬다.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 보고 싶었어.”
그렇게 하고 나서는 미안하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 얼굴 근육마저 똑같았다. 주란은 그리운 표정에 그만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여기서 넌 로봇이야, 따위의 말을 꺼낸다면 주란에게도 그리고 이― 로봇 태평에게도 좋지 않으리라. 그래서 주란은 그냥 그를 끌어안기로 했다.
태평(의 모습을 한 그것을 주란은 그냥 태평이라고 호칭하기로 했다.)은 조심스럽게 마주 끌어안고, 주란의 뒤통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너무 늦었어. 태평아. 네가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
어쩐지 어리광부리는 모양새로, 주란은 태평을 꽉 끌어안았다. 따뜻하지 않은 품이지만 덩치는 꼭 태평을 닮아 있었다.
“미안, 정말 미안해. 그래서 이제는… 계속 옆에 있을 거야. 하하……. 나도 란이 네가 없으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아 버렸거든.”
완벽하게 태평이었다. 비록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로봇 따위의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시체와 직면하고 있는 듯 고요했다. 어쩌면, 주란은 시체로 돌아온 태평과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란은 대체품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에 태평이 없는 삶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만들어낸 존재이다. 그렇다면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는 편이 좋았다.
태평은 다시금 주란의 삶에 녹아들었다.
기계 태평은 이전과 변함없이 굴었다. 때때로 주란은 저것이 기계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모든 행동이 태평과 똑같았다. 심지어 주란이 ―이때는 태평이는 이렇게 했겠지, 하고 추측하는 것을 벗어나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주란이 일방적으로 추측한 것 보다, 기계가 흉내 내는 것이 더욱 태평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란은 그런 종류의 예측이 틀리는 것이 즐거워졌다.
장을 보러 가서 이것저것 담는 내용물도 똑같았다. 대용량 시리얼, 무가당 그릭요거트, 치킨 너겟과 업소용 새우깡, 5개들이 라면 같은 것들. (어차피 저것은 기계라 먹을 수 없을 텐데도, 입력된 데이터 상에서 태평이 그런 것을 자주 샀던 것을 아니까 흉내 내는 것일 테다.)
시식 코너에서 판매원에게 싹싹하게 구는 것 하며, 신혼부부냐는 소리에 씩 웃으며 “네. 제 와이프, 귀엽죠. 신혼이에요.” 하고 주란의 허리를 끌어당기고 앞머리에 키스해대는 것도 똑같았다.
그래. 그래야지. 넌 태평이니까. 만족스러운 마음에, 눈을 가늘게 뜨며 주란은 태평의 가슴에 제 머리를 기댔다.
다만 그렇게 모든 걸 따라할 수 있더라도 기계는 기계였다. 종종, 주란은 그가 기계임을 실감했다.
샤워는 괜찮았지만 기계는 기계, 물이 들어가 고장날까봐 수영을 할 수 없을 때. (“…나도 정말 수영을 하고 싶어.”)
바다는 더욱 금물이었다. 소금기 있는 물은 기계에 녹슬게 하니까. (“…그래도 바닷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태평을 위해 한가득 준비한 음식을 앞에 두고, “…미안, 란아. 하지만 난 이걸 먹을 수 없어. 고장날 테니까. …그래도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걸. 이게 그리웠어. 보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아. 먹지 않았지만 배가 든든해지네.” 미안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을 때?
그 때 주란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태평의 턱을 잡고 먹을 것을 밀어 넣을까도 생각했다. 태평이라면 기쁜 얼굴로 저걸 맛있게 다 먹어치웠을 텐데. 싸늘한 표정에 태평이 더욱 슬픈 얼굴을 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라 주란은 단번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 저것은 태평이다. 태평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럼 참을 수 있었다.
“괜찮아, 태평아. …그럼 뭘 먹어야 해? 난 뭘 준비해야 할까.”
“그냥 충전하면 되는 걸. 먹여주고 싶으면 여기에… 연결해 줄래?”
하지만 그렇게 드러난 몸의 플러그 구멍에 전기선을 연결할 때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참았다. 이건 다른 종류로 먹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른다. 태평은 장난스럽게 먹는 척을 했다. 입에 들어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러다가 “역시 입이 비어 있으면 좀 그런가.” 하며 주란에게 입맞춤했다. 슬금슬금 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한 손에 부드럽게 잡으며 천천히, 느긋하게… 예전의 태평처럼 주란과 몸을 섞었다.
대체 이런 데이터는 어떻게 받아 간 걸까. 부드럽게 제 허리를 잡고 흔들어주는 손길에 따라, 태평의 위에서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신음을 내뱉으며 주란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태평을 잃고 정신없이 안드로이드 회사에 정보를 넘겨 줄 때, 이것저것 체크했던 것도 같다. 기억도 머리에 씌우는 기계로 스캔해 가져갔던 것 같고… 이런 기억도 전부 모조리 남김없이 쓰였던 것일까.
거친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태평은 원래도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 점에서 주란은 그가 가짜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크기도… 두께도, 허릿짓도… 키스해대는 것도…… 손길도……, ……똑같아.
“란아. 오랜만에 해서 그래? 더 예민해진 것 같네. 나 없는 동안 아무도 안 건드렸지? 기다린 만큼 줄게. 나 이제는 정말 한계가 없거든.”
태평아, 태평아. 그렇게 말하며 주란은 그에게 매달렸다. 정말 ‘돌아온 태평이’는 한계가 없었다. 원래도 느긋하고 오래 잡아먹는 타입이었는데 이젠 미칠 정도로 애태우고 끊임없이 움직여댔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그랬다. 그래도 주란은 이번만큼은, “더 세게 해 줘, 응? 걱정 말고. 날 위해서.” 하고 부탁했다. 쾌락이 무언가를 잊게 해주길 바라면서.
결국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 주란은 본능적으로 곁의 온기를 찾았다. 태평이 저를 끌어안고 있었다. 후후. 맞아… 태평인 잠결에 자주 날 끌어안았지. 사실은, 가끔 숨이 막힐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지금 그가 겪고 있는 호흡곤란과는 달리 기분 좋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지금은… 태평이와 같은 체온도 심장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 막혀…….”
같이 끌어안고 잘 때 들리지 않는 심장 박동소리 같은 것… 얕으면서도 깊게 잠들 수 있었던 태평이와 달리 이 기계는 그저 자는 척을 흉내 내고 있단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주란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만들어지고 난 후 계속 생각했어. 란이 네가 나 없는 동안 많이 외로웠겠구나, 하고.”
그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아는지, 태평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서 계속 네 생각만 하다 보니까…….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났어. 너를 달래 주자고, 내가 없는 동안 외로웠을 너한테……. 빨리 헤엄쳐 가자고.”
태평이 덤덤하게 속삭였다. 이 목소리가 좋았다. 가끔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러나 로봇은 늦은 새벽녘 낮게 잠긴 태평의 목소리를 구현하지 못한다. 주란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것은 알고 있을까. 태평은 나긋나긋 말한다.
“란이 네가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으면 내가 빨리 가야지. 숨 쉴수 있게 해 줘야지.”
순간 주란의 머릿속에서 살아있을 적의 태평의 말이 떠올랐다.
‘란아, 언제나 내가 네 쉼터가 될게. 네가 숨 쉴 수 있는 곳이 될게.’
“내가 이태평이든 이태평이 아니든, 내 의지에 따라……. 너를 위해서 뭐든 하고 싶어졌어.”
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난… 널 사랑해.
태평은 그렇게 속삭였다.
‘진짜’ 태평이도 그렇게 말했을까.
순간 주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진짜’ 태평이. 가짜를 만들어서 옆에 두고 대체하려 했지만 결국 불가능했던 거다.
이건 진짜가 될 수 없어.
주란은 조심스레 태평의 등 뒤를 더듬었다.
“…란아.”
의문 하나 섞이지 않은 채로 태평이 그를 부른다. 무엇을 할 지 알고 있다는 듯. 태평이는 눈치가 빠르니까. 그 무엇보다도 다정한 목소리. 체념과 슬픔 따위는 없는 목소리로 태평이가 덤덤하게 말한다. 따스한 눈빛에는 그 언제까지라도 자애로운 바다처럼 다정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사랑해.”
그리고 기계는 정지된다. 이제 정말 태평이는 없다.
주란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시금…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기계는 숨을 쉬지 않는다. 숨을 나눠 줄 수 없다.
란아. 하고 분명히 전원을 껐는데도 귓가에 태평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진짜 태평이일까.
아― 고래 로봇은 전기 바다의 꿈을 꿀까.
진짜 고래는 내 꿈을 꾸고 있을까?
분명한 건, 황새는 고래의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