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방이 막힌 흰 공간
은 조명도 없는데 밝다. 누군가가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내고, 한가운데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생긴다. 이윽고 당신은 의자에 앉는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의자가 두 개 있다. 다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한 존재가 의자에 앉아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 하얀 족제비다. 족제비는 당신을 째려보며 의자에 서서 길쭉한 몸을 일자로 쭉 세운다. 그리고 짧은 앞다리 두 개로 팔짱을 낀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노려보던 흰 족제비가 앞다리로 책상을 톡 친다. (쾅 치고 싶었지만 힘이 부족한 것 같다. 해석하자면, 아마도 화가 났다는 표시 같다.)
휴 (버럭) 이건 너무하잖아!요.
휴 말 좀 해 봐! 참고인 MJ! 그래!
휴 당신도 알잖아요! (입을 벌리자 날카로운 이빨이 보인다. 입을 벌린 채 책상으로 올라와 마구 왔다갔다한다.) 누가 먼저 태어났어!
당신 …태어난 건 다 비슷하게 태어났지? 프로필 올라온 걸 따지면 한날 한시 아닐까….
휴 프로필은 내가 제일 먼저 올라왔다구요! 앨런, 마크 그리고 유리! 올라온 순서로 따지자면 내가 첫째인데. 흑흑흑.
당신 그렇지만 프로필 상 나이는 제일 어리지 않아?
휴 (곰곰히 생각한다. 마크, 레이먼드, 티모시, 앨런, 유리, 케일럽… 그리고 휴. 따지고 보면 막내다.)
당신 우리 집도 아스틴이 제일 어릴 걸….
휴 그래도그래도! 어쨌든 성사는 제일 먼저 됐잖아요! 모두의 축하 속에서! 우리가 스타트를 끊었는데!
휴 그런데… 흐흑. (울상이 된 족제비가 책상에 철푸덕 눕는다.) 그런데 이런 게 어딨어요! 유블리스도 유진앨런도 책이 나오는데 아스휴 책은 왜 언급도 없냐구요! 흑흑.
당신 그건… 내가 쓰는 게 아니라서… 당사자에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휴 에잇! 그럼 당사자 나왓!!
어디선가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족제비는 손가락이 없으니 손가락을 튕길 수가 없다.)
그러자 당신의 옆자리에 MZ가 앉아 있다.
MZ (흘러내린 안경을 올려 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야.
휴 당신이 말해보시지! 당사자 MZ! 장유유서 몰라? 엄연히~ 이 휴 로젠 릴리스랑 우리 귀여운~ 사랑둥이 아스틴 밀러가 먼저 성사됐는데, 왜! 왜! 왜! 유리 살티코프랑 앨런 유니우스가 먼저 책을 받아가냐구요!
MZ 고것은… (땀을 한 방울 흘린다.)
휴 너무해! 나랑 아스틴도 책을 받고 싶단 말이에요! 개인지! 회지! 그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건데! 순서대로 해야지 유리 살티코프랑 앨런 유니우스한테만 주고!
당신 (그러고보니 아스틴은 어디에 간 거지…)
MZ 어, 어쩔 수 없어! (변명한다.) 너희는 단독으로 써져 있는 글이 별로 없다고.
휴 왜 없어요? 말해 보세요! (다시 일어서서 팔짱을 끼고 MZ 앞에서 노려본다. 앞다리가 짧아서 팔짱인가 싶긴 하다.) 내가 아스틴에게 생일 선물을 해주려다가 노라랑 영혼이 바뀌는 글도 있고, 로봇인 내가 아스틴을 찾아가는 글도 있잖아요. 잠깐, 이것밖에 없어~?!
MZ (땀을 흘린다.) 더, 더 있지 않았던가?
휴 너무해! 장녀, 아니 장남 차별이야, 이거!
MZ 내가 한국식 장남 몰아주기를 싫어해서…
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렇게 따지면 이거 나랑 아스틴이 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계급도 낮아서 차별하는 거냐고 할 거에요! 농민 계급 차별! 부르주아랑 귀족, 몰락귀족, 부자들만 열심히 써 주고, 너무해!
MZ (그렇게 따지니 할 말이 없다. 합죽이가 된다. 얘가 이렇게 똑똑했던가?) 아냐. 이, 인어공휴도 있잖아…!
휴 지금 얘가 이렇게 똑똑했던가? 하는 얼굴인데. 프로필 다시 정독하고 오세욧! 이 휴 로젠 릴리스는 멍청해 보이지만 율리시스를 독파했다는 설정이라고요!
MZ 유, 율리시스는 아니지 않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아니야?
휴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에 낸 율리시스 아무튼 그것도 읽었다구요! 이건 프로필에 없나? 어쨌든 난 멍청이가 아니야! 그렇게 부르주아 학자 계층(*앨런)을 좋아할 거면 나도 끼워 달라구요!
휴 인어공휴?! 그거 다음 편 안 나오고 있잖아요! 고작 2화 쓰고 런했으면서! 유블리스 책나오고, 유진앨런 단편쓰고 마왕용사 쓰던 기간에 1화만 더 쓰면 완결인데! 너무해!
MZ 아니, 내가 원래 삘이 안 오면 못 써. 그, 그리고 뭐냐. 그것도 있잖아. 라따뚜햄!
당신 (그건 썰 아닌가?)
휴 그건 단문 썰이잖아요! 차라리 빨리 글로 써주던가! 다른 애들도 썰을 글로 쳐 줘요? 그래도 우리가 제일 적을걸요! 소홀히 하는 거야! 역시~ 너무해! 항의한다~! 투쟁한다!
허공에서 빨간 머리띠가 떨어진다. 족제비가 주섬주섬 책상에 떨어진 빨간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다.
머리띠에는 [단결 투쟁] 이라고 흰 실로 박음질되어 있다.
당신 (10깅이 사이즈다…)
휴 투쟁한다! 항의한다! 농민 계급 하대 철폐하라! 공평하게 사랑해라! 에이지즘 철폐!
어느 새, 당신과 MZ의 맞은편 의자에는 누군가가 또 앉아 있다. 갈색 털이 잘 손질된, 조금 불쌍해 보이는 표정의 콜리다. 콜리는 처음부터 빨간 머리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다. 심지어 콜리는, [투쟁] 이라고 적힌 빨간 조끼도 입고 있다. 콜리가 결연한 표정이 된다.
아스틴 (고개를 끄덕이며) 항의한다! 항의한다…! 솔직히 생각하자면, 커미션도 적게 넣어주는 것 같아요.
MZ 커미션도?!
아스틴 그렇지만 엑셀로, 아니 표로 다들 몇 번이나 넣었는지 통계를 내 보면… 정말로 우리는 많지 않을 걸요.
휴 옳소! 아스틴이 확인했다! 우리는 둘다 털뭉치 동물이라 동물화 커미션 넣기도 쉬운데! 귀엽게 나올 거 보장되어 있는데 왜 안 넣냐고요! 혹시 홍대병 때문에?
당신 (확실히 용, 젖소, 황새, 귀신고래, 캥거루… 보단 쉬운가?)
MZ 하지만 커미션은 천천히 골고루 넣어주려고 하고 있는 걸.
휴 거짓말! 어제도 당신의 신세경, 내 친구 블리스, 토끼 커미션 넣었잖아욧! 유블리스만 이~만큼씩 넣구! 밸런스가 중요하다면서! 거짓말쟁이! 둘 다 눈동자 빨간색인데 눈색도 머리색도 다 다른 나랑 아스틴은 안 넣어 줘요? 우리는 피부색도 다르다구요!
MZ 어쩔 수 없었다니까~?! 토끼 커미션이 많은 걸 어떡하니…! 요즘 주토피아2 개봉해서 토끼가 또 유행이란 말야~!
당신 일리가 있어. 원래 유타란토도 별로 못 넣었는데 일본풍 커미션과 토마토의 떡상으로 많이 넣게 된 거라고.
아스틴 (그런가? 하는 표정) 그래도… 우리도 LD 커미션 같은 거 하나 받고 싶어요…. 아니면 글이라도….
휴 타로, 줄글, 썰. 이런 거 우리 신청한 적 없잖아요!
당신 아냐. 첫인상 해석 커미션 넣었던 것 같아….
휴 증거물로 MZ의 크레페 계정을 제출합니다! 자, 보세요! 여기, 저장된 신청서 항목들. 아스휴 서사 정리된 신청서가 없잖아! 그림만 있구!
당신 (뜨끔…) 너희만 그런 건 아냐….
휴 에이잇! 아니긴 뭘 아냐! 피고인! 당신은 죄인입니다! 변명하지 마세욧! 유진앨런. 매리버. 매리버. 태평주란? 유블리스. 유블리스. 베니아일. 운현수. 운현수. 호의현! 주형요한, 유타란토…!!
아스틴 (어느새 안경을 쓰고 있다. 도수 없는 안경이다.) 저희는 이미 홀대받는자컾연합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강아지부모캐릭터협회와도 연합하고 있습니다.
휴 맞아! 우리도 케르 베로 스우 새서미 버디 태백이 말고 잭! 잭이라는 귀여운 강강쥐를 키운다고요! 햄부기? 음… 나를 아주 잘 조종했지만. 귀엽긴 하지만! 잭과 노라는 원, 년, 멤, 버! 원년멤버라고요! 그야말로 장유유서의 살아있는 화신! 그러니까 챙겨줄 수 있잖아요!
아스틴 맨날 유노랑… 아가페랑 토닉도 생겼구… 이제 버디랑 태백이도 있어서… 그리고 스우랑 새서미랑 햄부기도 너무 강력해요…. 캐릭터성이 강력해서 그 친구들만 얘기하나요?
휴 우리 잭~! 도 얼마나 길쭉하고 통통하구 귀여운데요! 핫도그같구!
아스틴 노라도 얼마나 까칠하고 상냥한 고양이인지… 그리고 고양이 키우는 집은 우리밖에 없는데 얘기도 잘 안나오고.
MZ 진정해. 다 순서가 있어. 이게 다 앙스타 로테이션 같은 거야… 기다리면 된다니까.
휴 피. 고. 인! (뒷다리로 책상을 마구 친다. 긴 꼬리가 흔들린다.) 앙스타 로테이션은 차별이 너무 심하잖아욧! 거기는 비인기 캐릭터면 2년동안 5성을 기다린다구요!
아스틴 앙스타 로테이션… 이란 말씀은. (앞발을 책상에 올린다. 안경을 여전히 쓰고 있다.) 피고인이 앙스타 처럼 차별적인 로테이션으로 커미션과 글을 쓰겠다는, 그런 혐의 인정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당신 (변호사처럼,) 억측입니다. 무고하게 몰아가는 말에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MZ 잠깐잠깐 그러면 진짜 내가 피고인이 된 것 같잖아….
족제비는 흥! 소리를 내더니 콜리에게로 향한다. 콜리의 앞다리를 타고 올라가 콜리의 목을 감고 자리잡는다.
아스틴 실은… 휴가 많이 불안해했어요. 단지 다이어리를 초록색으로 샀다는 것으로 주형요한 커미션을 많이 넣겠다 다짐하는데, 같이 홀대받던 아스휴는 왜 언급도 안 되는 거냐며 슬퍼했죠.
MZ (아니, 그렇다고 커플의 숫자를 줄일 순 없잖아. 사랑을 공평하게 나눠준다면 그게 사랑인가, 계획이지.)
아스틴 그런데 이번에 유진앨런 회지도 나온다고 하니까, 왜 이렇게 유진앨런을 좋아하는 거냐면서, 동물을 많이 키워서라면 우리는 원래부터 잭과 노라가 있었는데, 거기는 새로 앵무새도 들였다고 슬퍼했어요.
당신 그럼 너희도 뭐 한 마리 키울래? 그런데 너희는 이미 농장이니까 동물들이 많지 않아?
아스틴
그럼요. 언급되진 않지만 많죠. 동물애호가라서 유진 씨와 앨런 씨의 이야기가 많이 쓰여지는 것이라면, 저희도… 저도… 저도 공룡 좋아해요!
MZ 엥? 진짜?
당신 그건 생각을 좀 해 봐야 돼….
휴 아무튼! 너무 우리를 저쪽으로 치워두지 말라구요! 다른 친구들이 주목받는 게 싫다거나 뺏어오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서운하고 소외감 느껴진단 말이에요…. 우리도 회지랑, 글이랑, 그림, 타이만이랑 잔뜩잔뜩 받고 싶은데…. 그리고! 컨셉 확실해서 만들기도 쉬울 텐데….
아스틴 관심이 없으면, 잊혀지면… 그럼 저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걸까요? 휴는 그걸 무서워하는 걸지도 몰라요. 미국 남부 농촌의 세계가 지루할 것 같아서 쓰지 않는 것은 이해 되어요. 대학생 AU도 끝났구요. 요즘 유행하는 저희가 무서운 세계에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할게요, 장모님은 공포를 좋아하시니까.
휴 맞아! 나 잘 싸울 수 있어! (족제비가 바둥거린다.)
당신 (정말로…?)
아스틴 (진짜…? 라고 생각하고 휴를 바라봤다가,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당신과 눈이 맞는다. 역시 부모자식이다.)
MZ 흠흠. 그러면 미국 B급 공포 특집으로 아스휴랑 카할미아랑… 제논노아 앤디애셔? 정도인가?
당신 앤디애셔 제논노아는 그 헤매는 성 쪽에, 재단인가 어디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MZ 아 맞네. 그럼 세 부류로 나뉘어져서 정말 일반인 민간인인 아스휴랑 카할미아, 홀려 들어가서 반쯤 일원이 된 릭드윈, 유블리스, 유진앨런. 그리고 재단 관계자인 제논노아 앤디애셔 이 정도로 나뉘겠다.
휴 베니아일, 운현수, 호의현, 태평주란, 주형요한, 유타란토도 잊으면 안 돼요.
MZ 뭐 하나 빼놓고 하기는 힘들구나… 알았어. 바빠서 그랬어. 미안해! 시간 나면 저것도 써볼게!
휴 인어공휴도 잊으면 안 돼요!
MZ 마치 내 죄책감이 대신 말하는 것 같군. 알았다니까. 일단남의자컾써주고유진앨런회지쓰고앤디애셔시날쓰고가고태평주란사룡장락에인장그리기까먹지말고주형요한커미션을넣고크리그어리플북도까먹지말고……
족제비가 콜리의 머리 위에서 비명지른다.
휴
몰라―! 결국 원점회귀잖아~!
그때, 누군가 MJ와 MZ의 등을 쿡쿡 찌른다. 등 뒤에는 무수히 많은 자캐들이 투쟁 머리띠를 쓰고 서 있다…
노아 아. 저희도 기다리고 있었어서…
결국.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