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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휴의 휴가休暇 혹은 휴거携擧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순간 아스틴 밀러는 그것이 휴 릴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휴는 죽었으니까.

 

둘만의 고향 집으로 돌아온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이맘 때 즈음이면 휴가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그래서 카페 문에 <이주일 동안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를 붙여 놓고 고향인 테네시로 내려오곤 했다. 오랜만의 휴가였다. 플로리다의 시끌벅적한 바닷가의 카페는 언제나 늘, 손님이 밀려 들어서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휴와 관련된 것도 전부 잊을 수 있었다.

창가 한구석의 꽃을 피우지 못한 선인장이라거나―아스틴! 이거 봐~ 얘는 언제 꽃을 피울까?―, 아직도 버리지 못한 휴의 분홍색 앞치마에 잔뜩 담겨 있는 휴의 글씨체로 적혀진 여러 쪽지들―세계 최고의 파티셰 아스틴에게,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쿠키를 주문합니다!― 같은 기억들을 애써 다른 곳으로 밀어 두듯이.

 

휴는 이맘때 죽었지.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아스틴은 씩씩한 편이라는 것이다. 휴와 함께한 시간은 6년, 그리고 죽은 뒤 휴가 없는 시간은 3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틴은 언제나 후유증처럼 자신의 절반이 휑하니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기시감을 느낀 것은 그것이 휴가 두들기는 방식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은 콩콩, 열어달라는 듯이 두들기다, 아스틴이 깜빡하고 열지 않으면 “아이 참, 아스틴~ 문이 잠겼어! 열어 줘~.” 하면서 콩콩콩, 세 번 두들긴다.

 

정말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하지만…….

만약 혹시 휴의 유령이라도 돌아온 것이라면?

열었을 때 아무도 없더라도 책임질 준비를 하며 아스틴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을 비볐다.

 

휴가 있었다.

 

흩날리는 긴 금발과, 자신을 올려다보는 동그랗게 뜬 눈동자와, 코의 점과, 그 모든 분위기가, 형용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휴가 살아 돌아온 것 마냥.

 

그래서 아스틴은 당연한 순서로 휴를 끌어안았다.

말없이, 입술을 꾹 깨물고 아스틴은 이것이 환상이라도 상관없다고 느끼며 휴를 끌어안았다. 놀랍게도 환상 속의 휴는 부피감이 있었다. 확실할 정도로 그의 안에 단단히 안겨 들어왔다.

 

"아스틴……?”

 

문제점이 있다면 목소리까지 똑같다는 점이었다.

정말 자신이 미쳐 버린 걸까.

하하, 휴. 나… 휴가 없어서 미쳐 버렸나 봐요. 이런 건 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아스틴은 그런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휴가 제 이름을 부르는데 대답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응. 휴. 보고 싶었어요.”

“아스틴…….”

 

휴는 말끝을 흐리며 한 손을 그의 가슴께에 올려놓았다.

물기 어린 목소리로 아스틴이라고 부르는 어투가 정확하게 휴였다.

왜 슬픈 어조일까, 무엇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어요, 이제 고향집에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한 거예요? 다행이에요, 날 보러 천국에서 내려와 줬군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아스틴은 제 안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제 품 안의 휴가 사과하는 것이 먼저였다.

 

“미안해……요. 아스틴, 저기…….”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아스틴은 휴가 자신을 두고 죽은 것에 대한 자책이나, 얼마 있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 등을 사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 존댓말을 쓰는지는 잊으려 했다. 그러나 안에서 꾸물대며 주뼛거리던 휴가 꺼낸 말은 다른 종류였다.

 

“…아스틴, 밀러. 미안해요. 저는 휴가… 휴 릴리스가 아니에요.”

 

휴는 그렇게 말하며 아스틴의 한 손을 잡아 제 가슴께로 올렸다. 말랑한 촉감이 느껴진다. 살짝 따뜻한 느낌이다. 그러나 뭔가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제야 아스틴은 이 휴가 눈을 깜빡이는 것이 평소보다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단 것도.

휴가, 결심했다는 듯이 질끈 눈을 감았다 뜬다.

 

“저는 휴 릴리스의 불법 복제 안드로이드에요…….”

 

슬픈 눈빛을 하며, 처연하게 고개를 떨어트리고, 허망한 목소리로, 휴는, 아니- 안드로이드는 그렇게 말했다.

 


 

아스틴은 늘상 카페에서 일하니까, 커피를 내 오는 것이 습관이었다. 일단은 그 휴(의 불법 복제 안드로이드)를 의자에 앉히고 자연스럽게 커피를(휴는 카페모카를 좋아했으니까 그 종류로) 건넸다. 그러나 휴는 자기 앞에 컵이 놓이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아, 나, 나는… 안드로이드라서…,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어……요.”

 

그러더니 허둥지둥 양 손으로 컵을 잡고는, “그, 그래도 저를 위해 커피를 내려 준 건 고마워요, 아스……, 밀러…… 씨.” 하고는 마시는 흉내를 낸다. 눈치를 보는 것이 꼭 예전 처음 만났을 때의 휴 같았다. 그때의 휴는 남의 눈치를 너무 봤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어……. 맛있어요. 물론 전 못 마시지만, 그러니까…! 여기 들어간 밀러 씨의 정성이…….”

 

휴를 불법 복제한 로봇이라니.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아스틴은 저런 기가 죽은 모습의…… 휴의 모습을 한 로봇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스틴이라고 불러도 돼요. 밀러 씨라니, 너무 딱딱한걸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말도 편하게 해도 되고요.”

 

실제로 그랬다. 어느 누가 휴를 불법 복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한 휴가 기운 빠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기분이 든다. 이 기계는 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심장이 먼저 반응해 오니까.

 

“당신은 사실 그런 말투를 쓰지 않죠? ……정말 휴의 불법 복제 본이라면, 말투도 휴와 똑같았을 거 아니에요.”

“그건……. 맞지만…….”

 

우물쭈물하던 복제 휴는, 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한참 시선을 아래쪽으로 둔다.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걸까, 한참을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 휴와 판박이다.

 

“후우―….”

 

결심한 듯이 숨을 한 번 쉬더니, 식탁 위에 올린 양 손을 주먹 쥐고 아스틴을 똑바로 마주해 온다. 유리로 만들어진 것일까, 투명하고 아름다운 분홍색 동공 안에 그의 얼굴이 담기는 것만 같다.

 

“일단, 미안해, 요. 난…… 만들어지고 싶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눈알을 도륵도륵 굴리며(기계라 정말로 그렇게 굴러가는 것 같기도 했다), 휴는 말을 이었다.

 

“그…… ‘진짜’ 휴, 말이에요.”

“네. 음,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요.”

“내…… 주인이 한 눈에 반한 모양이라. 몇 번 대쉬도 했지만 차였…… 대요. 옆에 당신이… 당신이 있어서.”

“…….”

“그래서 어, 내 주인은 뇌파 스캔 기억, 안드로이드의 뭐 그런, 곳의…… 높은 사람이란 말이야, 에요. 아아….”

 

또 존댓말을 틀리자 휴는 이제 자기 머리를 양 손으로 쥐어뜯었다.

 

“몰라~! 아스틴한테는 존댓말 못 쓰겠어. 그야 ‘휴’의 기억과 인격을 온전히 복제했다고. 그래서 아스틴한테는 못 쓰겠어…….”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요. 난 괜찮아요.”

“응, 그렇지만, 난… 난 ‘진짜’가 아니니까.”

 

훌쩍,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휴가 코를 먹는다.

 

“이건 전부…… 입력된 거긴 하지만. 어쨌든 주인은 뇌 건강검진을 온 진짜 휴 씨의… 기억을 빼 가고, 그의 외형을 그대로 베껴서 날 만든 거야. 불법이지. 근데 주인은…… 돈이 많아서. 그리고는… 나는 그의…. 음, 말하자면, 진짜 휴가 원래 했던 일 있잖아.”

 

순식간에 아스틴의 기분이 나빠졌다. 휴가…… 양아버지에게 주워지고 나서부터 해야만 했던 일. 원치 않았는데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던, 인생 전반에 걸쳐서 그를 옭매고 있던 족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창기. 근데 난 기계니까 오나ㅎ…….”

“……그만. 알았어요. 휴의 얼굴로……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미안. 역시 너무 천박한 단어지. 그렇지만 그거 말고 설명할 단어가 없었는걸, 실제로 주인은 내게 자주 그런 말을 했어.”

 

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저건 식용 생리식염수일까? 휴와 얼굴이 똑같은 존재가 울고 있으니 아스틴의 심장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다행이지, 난 기계라서 좀 더 튼튼하거든. 그리고 부숴져도 복구 가능하니까. 이 다리도, 팔도 몇 번이고 복구했어.”

“…….”

“성능도 창관에 납품되는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걸 썼으니까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내가… 아니, ‘진짜 휴’가 결국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죽은 것이 어지간히 억울했나 봐, 주인은……. 그래서 널 사랑하고 있는, ‘진짜 휴’의 인격마저도 그대로 복사해서.”

“…….”

“말하자면 ‘빼앗는’……. ‘괴롭히는’ 걸 즐겼던 거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넌 어차피, 흑……. 아, 미안, 깜짝 놀랐지~? 원래 안드로이드는 눈물을 못 흘리니까……. 아, 나, 나는 괴롭히거나 맞으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설계된, ‘그런 용도’의 안드로이드니까……. 흑…….”

 

맺힌 눈물이 기계처럼 눈을 깜빡일 때마다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고인다. 아스틴은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뺨에 붙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넌 어차피 ‘가짜’니까 돌아갈 수 없다고. 아스틴 네, 네가 날…… 날 혐오할 거랬어. 나,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불쌍한 안드로이드는 어쩌면 인간보다도 성능이 더 뛰어날 양자융합 뇌와 핵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분명히 저 감정도, 기억도, 마음도 다 진짜일 텐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들을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스틴 또한, 물론, 이것이 ‘진짜’ 휴가 아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진짜 휴를 이 로봇이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싫어할 일도 없다. 복제 휴를 제 가슴께에 끌어안으며, 아스틴은 차분하게 그를 위로했다.

 

“아니에요, 어찌 되었건 당신은…… 휴의 기억과 성격을 전부 가지고 있는 걸요. 그런 당신을…… 비록 당신이 복제라고 해도 제가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요.”

“훌쩍…….”

 

이윽고 울음소리가 커졌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아스틴……. 나 그 사람 싫어, 또 그런 짓을 하기 싫었어, 매번, 흑……. 매번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라고 시켰는데 너무 싫었어, 죽어버릴까 했단 말이야…….” 휴는 아스틴의 가슴이 축축해지도록, 아이처럼 큰 소리로 서럽게 울어 댔다.

 

울음이 조금 그쳤다. 아스틴은 습관처럼 따뜻한 커피를 내 오기 위해 일어서다가, (그야 처음 내 준 커피가 다 식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는 무언가를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앉았다. 반사적으로, 마시멜로우를 띄운 코코아를 마시던 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근데 그럼…… 당신은 여기 어떻게 온 거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복제 휴는 깜짝 놀랐다. 몸이 튀어오르듯 흠칫, 놀라는 것이 누가 봐도 찔리는 것이 있는 모양새였다.

 

“그, 그게……. 아스틴이니까 말해도 되겠지.”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아니, 듣다 보니 아스틴은 그 주인이라는 작자가 죽어도 싼 존재라고 생각했긴 했지만, 누군가를 죽이면 휴 같은 여린 멘탈의 소유자는 죄책감을 가지고 만다.

아스틴의 속도 모른 채로 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 도망 나왔어! 그러니까~? 휴가~ 야!”

 

휴라면 딱히 충격적인 발언이 아니었지만, 로봇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벗어날 수 있구나, 도망갈 수 있구나. 만약 그것이 어떤 행동을 억제하는 규칙을 통해 묶여 있는 프로토콜이라면 복제 휴는,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한 거지?

 

“그러니까 잘 부탁해! ……한 일주일 정도? 금방 내 위치가 발각될 테니까!”



 

휴는 금방 이 집에 적응했다. 이 집에서 살았던 시절의 기억도 복제되었던 것이다. 아스틴이 놀란 것은 휴와 복제 휴의 유사도였다. 뒷짐을 지고 상체를 약간 숙인 채로 “뭐 하고 있어~?” 하면서 다가오는 것도 똑같았고, 요리를 돕겠다며 왔다가 베이컨이며 계란 프라이를 다 태워 버리는 것도 똑같았다.

씩 웃는 모습,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웃는 모습, 장난치기 전의 장난스러운 웃음, 기쁜 것을 봤을 때 활짝 웃는 모습도 똑같았고, 슬픈 것을 보았을 때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우는 것도 똑같았고, 무서운 것을 봤을 때 아스틴에게 바짝 붙어서 덜덜 떠는 것도 똑같았다.

언제나 한 자리에 가만히 붙어 있지 않고 집안이며 집 밖이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거나 이것저것 하는 것도 똑같았다. 흙투성이가 되어서 미안하다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나, 물로 씻겨 낼 때―나는 ‘물에서 하는 플레이’에도 쓸모가 있어야 돼서 방수가 되거든…―얼굴에 거품을 묻히고 활짝 웃거나.

“이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곳이구나, 정말 예쁘다. ‘나’는…… 진짜 휴 릴리스도 이걸 봤을 때 엄청나게 기뻤겠지, 감탄했겠지.” 하면서 하얀 사과꽃이며 아카시아 꽃이 잔뜩 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의 감상을 내뱉을 때도 그 아련한 표정이 똑같았다.

 

정말 천국에서 휴가를 즐기러 내려온 휴와 함께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적어도 아스틴에게는 그랬다. 휴가를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까지의 휴가는 휴가 없었으니까. 사실상 시골에 있는, 휴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조용한 곳에서 그를 추억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휴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고, 잭도, 노라도 없다. 먹먹하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가끔 자신의 혼잣말만 울려퍼지는 먼지 쌓인 집.

 

복제 휴는 진짜 휴와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아스틴은 정말 옛날로 돌아간 기분을 만끽하며 가끔 자기 전에는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옆방의 휴가, 그는 로봇이므로 잘 수 없으므로, 혹여나 자기 눈물 소리나 자기 감정을 눈치챌까봐 숨기곤 했다.

 

어제는 이불을 들고 휴가 “아스틴, 자?” 하면서 찾아왔다.

아스틴은 같이 자 줄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휴는 달빛에 파랗게 빛나는 목선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긴 속눈썹이 눈가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안해, 내 욕심인데……. 몸을 섞어 달라는 건 아니야, 나도, 진짜 휴도 아마 그런 건 바라지 않을 테니까. 난 그냥…… 그냥 네가 잠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나, 나는 잠들 수 없으니까. 네가 자는 모습을 보면 그런 기분이라도 들까 싶어서…….”

“……그런 거군요.”

“응. ……될까?”

“심심하지 않겠어요?”

 

복제 휴는 고개를 저었다.

진실된 감정을 보여주는 눈빛에 아스틴은 결국 졌다. 고개를 끄덕이자, 휴는 우물쭈물하며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아스틴의 머리맡 근처에 앉았다. 아스틴은 다시 눈을 감았다. 휴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까. 시선이 느껴진다.

밤에 자기 전에 가끔…… 아니 자주, 휴를 떠올리다가 잠을 설치곤 한다. 옆자리를 파고드는 따뜻한 체온이 없어서 허전한 기분이 든다. “아스틴….”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아스틴.”

 

하고 누군가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진다.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휴가 죽은 후 아주 오랫동안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잘 자.”

 

그리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까.

아스틴은 어쩐지 오늘만큼은 꿈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진짜 내가 묻혀 있는 곳이구나…….”

 

햇빛을 피하기 위해 휴가 자주 쓰던 하얀 챙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눌러 쓰며 휴가 아스틴의 뒤를 쫓아왔다. 할아버지의 무덤, 잭과 노라의 무덤도 이 근처에 있었다.

휴의 무덤은 깨끗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아스틴이 주기적으로 와서 무덤을 정돈해 주기 때문이었다. 가끔 큼지막한 장미꽃다발을 사다가―국화를 살 수 있었지만 휴는 장미를 좋아했다―묘비 앞에 두고 아스틴은 밀렸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옆에 복제 휴가 있건 없건, 아스틴은 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잭의 손자는 지금 제가 키우고 있지 않아요, 전에 말했던 저희 카페에 자주 오던 손님이 데려갔어요. 가끔 사진이 오는데 잘 크고 있어요. 사고를 치고 당당한 모습이 잭이랑 똑같다니까요. 노라의 손자 고양이들도요. 한 마리 정도는 제가 키울까 했는데, 제가 키우던 아이도 휴가 보고 싶었는지 일찍 죽어 버렸네요, 미안해요. 휴가 잘 데리고 있어 주세요. 그 곳은 잭이며 노라도 있으니 휴가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하하, 털에 둘러싸여 있어서 옷이 털투성이가 되겠어요. 잭이랑 노라는 싸우지 않나요? 휴, 제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건 아니죠. 저는 괜찮아요. 카페도 잘 되고 있고요, 손님들이 제 걱정을 얼마나 해주었던지.

 

옆에 서 있던 복제 휴는 모자를 양 손으로 들어 잡고는 그저 아스틴이 주절주절 내뱉는 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묘비를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스틴은 그 쪽을 바라보며 묘비에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이쪽은 복제 휴예요. 음, 휴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군요. 휴를 많이 좋아하던 어떤 사람이…… 만들어 버렸대요.”

“안녕~ 나!”

 

기운차게 말하며 복제 휴는 터벅터벅 걸어와서 묘비 앞에 앉았다.

 

“나도 얘기해도 돼?”

“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돼요. 당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요?”

 

그 말에 복제 휴가 그를 본다. 대답하지 않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묘비에 한 번 손을 올리더니, 눈을 감고 심호흡하고는 얘기를 시작했다.

 

“너는 이런 생활을 어떻게 버텨 냈을까? 난 로봇이지만 넌 인간이잖아. 있잖아, ‘나’. ‘진짜 나’. 처음엔 네가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네 기억을 보다 보니 아스틴은 너무 좋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견딜 수 있었어. 가끔은 그의 사랑을 죽어서도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네가 너무 부러워. 하지만 그것마저도 ‘나’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결국은 받아들일 수 있어. 나는 너니까.”

 

휴는…… 묘비에 얼굴을 대고 기댔다.

 

“그러니까 알 수 있었어, 너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선택을 했겠지.”

 

그리고는 아스틴을 올려다본다.

 

“아스틴. 내 코어는 사실 한계에 가깝게 굴려지고 있었어. 그래서 결국 정지될 거야. 코어는 소모품이니까 그럴 수 있어. 문제는 이, 머릿속에 있는 인격과 기억이 들어가 있는, 핵심 뇌 모듈이야. 그러니까 내 주인은 나를 찾아다, 코어만 바꾸고 날 다시 기동시킬 거야.”

 

아스틴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가 자신에게 무슨 부탁을 할지 직감했다.

 

“가슴의 코어가 정지되면, 내 머리를 부숴 줘. 그 안에 들어 있는 기억은 백업 된 곳 까지 내가 전부 부숴 버리고 나왔거든. 내 외형을 따라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내 인격이 사용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너와의 기억을 추억하며 울고 싶지 않아. 다시는 나 같은 로봇이 생기지 않게 해 주라. 부탁이야.”

“……코어는 언제 정지되나요?”

지금. ……일주일 정도 남아 있었거든. 부탁, 들어 줄 수 있어?”

 

아스틴이 고개를 끄덕이자, 휴는 다시 힘없이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널 보고 싶었어. 진짜 휴가 그토록 사랑하던, 휴를 그토록 사랑하던 너와 함께 있으면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휴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정말 최고였어. ‘나’는 항상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구나……. 이게 행복이란 거구나, 이게 집이라는 거구나. 그렇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이게, 가족이라는 거구나. 그치? 아스틴…….”

 

묘비에 기댄 기체가 서서히 힘이 빠진다. 머리를 묘비 윗 쪽에 기대 앉아 끌어안은 상태로, 휴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휴? 휴. 일어나요.”

 

요 일주일을 통틀어 처음으로, 아스틴은 그 로봇에게 ‘당신’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휴’라는 이름을 불러 보았다. 로봇은 잠들지 않는다. 그냥 자는 척 하는 걸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체는 일어날 일이 없었다.

 

원래 휴를 고스란히 빼닮은 이 로봇은, 천국으로 올라가 휴와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쩌면 서로 웃으며 절친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웃고 있는 두 명의 휴를 상상하며 아스틴은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안녕, 휴. ……그리고 휴.

 

 

이것은 휴의 휴가休暇 혹은 휴거携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