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적막.
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아주 미세한 소리와 빗방울이 벽과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 저 밖에서 갓 태어난 새가 짹짹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
하염없이 작은 소리에도 누군가 나를 깨워줄까 두근거리며 저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전원 모드도 절전 모드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멈춰 버린 것은 아마 오류인 듯합니다.
아, 햇빛 아래에서 기체를 움직이며 고양이처럼 늘어져 자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건 제 모델이 된 인간의 버릇일까요.
몇 날, 며칠이 지나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깨워줄 날은 올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가 슬픔이라거나 초조함 같은 감정을 느낄 일은 없었습니다. ……아마도요. 저는 로봇이니까요.
아,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정도로 큰 소리는 처음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창고였던 걸까요, 쇳덩어리가 다른 쇠를 마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래도 밖에서 자물쇠를 열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조용하네요. 아, 시끄러운 소리입니다. 지금껏 이렇게 큰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탕탕탕 거리는, 쇳덩어리와 쇳덩어리가 부딪히며 귀를 찢어버릴 것 같은 큰 소음이 들려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런 소리는 총알이 쇠를 부수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끼익― 하고, 무거운 강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지금 제 가슴의 코어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을 뭐라고 칭해야 할까요. 불안감, 기대감? 하지만 저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터벅, 터벅. 무게감을 실은 남자의 구둣발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제 앞에서 멈춥니다.
“……일어나.”
그리고 저는 저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고개를 들어 눈과 눈을…… 마주합니다.
처음 제 카메라, 그러니까 시각 장치가 인식한 것은 붉은 눈동자였습니다. 저도 붉은 안구를 지니고 있는데요. 제가 모델로 삼은 인간이 금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저보다 살짝 채도가 낮은 적색 눈동자가 매섭게 저를 노려봅니다. 하나로 넘겨 잘 정돈한,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남자다운 이마가 있습니다. 그 밑에 굵은 검은 눈썹이 있구요. 저를 노려보는 적색 눈동자와, 날카로운 코, 다부진 턱이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추구하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입니다.
그런데 왜, 눈동자는 저렇게 슬픈 걸까요? 이글이글 불타는 용암같이 분노를 머금고 있던 눈동자가, 저를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 같습니다.
“……블리스.”
그는 한참이나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물기 어린 듯한, 먹먹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맞습니다. AMS-BLESS_FLETCHER_01, 그게 접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개체입니다. 저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블리스 플레쳐를 모델로 제작된 바이올린 연주용 안드로이드거든요. 이를테면 클래식을 좋아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안드로이드인 셈이죠.
마치 뚫어질 것처럼 저를 쳐다보던 남자는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또다시 한참을, 한참을 기다립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그에게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겠죠.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잠자던 저를 깨워 준 인간이니까요.
“……일어설 수 있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뱉은 말에 저는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벌떡,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천천히 관절 가동 부위와 인공 근육을 움직여서 일어서 봅니다. 정말 오랜만에 움직이는 기체는, 삐꺽삐꺽 소리도 없이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고장 난 부분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자니, 남자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저를 계속 쳐다봅니다. 무덤덤한 어투로 남자는 제게 명령하듯 말합니다.
“이제 가자.”
“하지만, 어디로요?”
“집으로.”
당연하다는 말투입니다.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무어라 더 묻기도 전에, 그대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갑니다.
저도 모르게 남자의 뒤를 쫓아갑니다. 같은 남성형인데 왜 따라잡기가 이렇게 힘든 걸까요? 보폭의 차이일까요? 분명 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기체에 대한 예의가 별로 없는 남자입니다.
“집? 제 주인의 명에 의하면 저는 이곳에 있어야…….”
“네 주인은 죽었어.”
남자는 무뚝뚝하게 내뱉습니다. 그건 충격입니다. 주인은 저를 사서 단 한 번만 연주를 시키고 계속 저 안에 넣어 놨단 말인가요. 언젠가 다시 한번 저를 꺼내서 연주를 시켜줄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는 저 창고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바이올린을 떠올립니다.
“내가 죽였다.”
남자의 마지막 말이 창고를 울립니다. 그 말에 저는 창고에 우두커니 멈춰 섰습니다. 제가 멈추고도 몇 걸음을 성큼성큼 걸어가던 남자가 정지합니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왜 따라오지 않느냐는 듯 쳐다보네요.
“그렇다면 소유권은……. 제 주인의 아들에게로…….”
“그 자도 내가 죽였다.”
“그렇다면 그 손녀의……. 합법적인 유산 상속자에게…….”
우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바이올린 연주용 로봇이라 법률 지식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데이터베이스를 쥐어짜듯이 돌립니다. 아아……. 모르겠어요. 이런 건 주인의 가족이 직접 와서 저를 인수인계 해 가야 하는데요. 저같이 비싼 물건은 변호사가 와서 누군가에게 안겨 주곤 하지 않나요. 고민에 빠져 걷지도 못하는데,
“귀찮군……. 남은 핏줄도 전부 죽일까?”
남자가 픽 웃더니 끔찍한 소리를 합니다. 저 남자는 분명 실제로 그렇게 하리라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남자는 이번엔 휘청휘청 걸으며,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할 뿐입니다.
“블리스. 잔말 말고 따라와. 넌 이제부터 내 거니까. 정 원한다면 내가 네 주인의 손자라는 거짓부렁이라도 입력해 줄까.”
생명은 소중합니다. ……제가 쫓아가지 않으면 정말 주인의 다른 가족들이 죽겠죠? 그들에게는 일말의 애착도 없지만, 단지 제 소유권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전 창고에 처박혀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가 한 번 듣고 취향이 아니라 처박아 둔 자동 음악 재생 기계 때문에 손녀가, 증손녀가 죽는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어쩌면 오류가 있어 블리스 플레쳐를 완벽하게 재생해내지 못해 창고에 처박힌― 주인을 만족시키지 못한 이따위 고물 덩어리, 이따위 로봇 때문에.
그래서, 전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제게 입력된 프로토콜임을 잘 알았지만,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제 의지로, 검은 자켓으로도 숨겨지지 않는 건장한 등을 쫓아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