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대기 전력 모드로 바꿀 수도 있었는데 그냥 가만히 유리의 품에서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거든요. 유리는 자면서 저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가끔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듯이 제 이름을 불렀고요.
대체 그는 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저야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렇다면 진짜 블리스 플레쳐 씨와 무슨 관계가 있었던 걸까요? 그래서 밤새 저는 그것을 고민하고 상상했습니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혹시 원수라도 되는 것 아닐까요? 칼이라도 맞았다거나요. 나름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생각합니다. 헉, 그럼 역시 제게 대신 복수를 하려는 걸까요. 무서워서 다시 몸이 뻣뻣해지면, 유리는 저를 더 세게 끌어안아 오고. 마치 살아있는 슬리핑 쿠션이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깊은 잠에 빠진 그를 목 졸라 죽이고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제가 돌아갈 곳이 없기도 했거니와 왠지 저를 이렇게 꼭 끌어안고 있는 유리를 보면, 제가 죽더라도 어떻게든 쫓아 올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겼다고나 할까요. 예, 일말의 동정심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체 제가 왜 유리에게 동정심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겠죠…….
해가 뜨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난 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시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만졌습니다. 하기사 그렇게 제 이름을 중얼거릴 정도면 제대로 잠을 잔 건 아닐 테니, 두통을 느낄 수밖에요. 한참 관자놀이를 만지더니,
“블리스, 잘 잤어?”
하고 물어보는 모습은 처음의 사나운 모습인지 어젯밤의 다정한 모습인지 구별이 안 됐습니다.
“뭐, 로봇은 잠을 못 자니까.”
퉁명스러운 어조로 내뱉고 나갈 준비를 하는 걸 보니 처음의 사나운 모습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유리는 이중인격일까요? 아니면 잠을 자고 피로를 풀고 나면 도리어 성격이 나빠지는 타입? 도통 알 수 없는 인간입니다만, 제가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저는 길게 한숨을 쉬고―“한숨은 왜 쉬는 거지.” 하고 유리가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유리의 등을 쫓아 나갔습니다. 전주곡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유리는 저번처럼, 지나가던 자기부상 바이크를 하나 낚아채더니 그 뒤에 저를 태웠습니다. 그리고는 또 인정사정없이 달려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귀찮게……. 다 늙어빠진 새끼의 자기만족이야…….”
헬멧도 쓰지 않고―이상하게도 저한테는 헬멧을 꼭 씌워 주었습니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제 두개골보다 유리의 두개골이 연약할 텐데요― 중얼거리는 유리의 목소리를, 소리에 민감한 저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생각할 틈은 없었습니다. 인정사정없이 달려나갔다고 했잖아요.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걸요.
한참을 달려― 유리가 멈춘 곳은 의외였습니다. 아기자기한 카페였거든요.
그 카페는 1층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하나둘 네온 전등을 달고, 철과 구리를 달아 대고, 네모반듯하고 깔끔함을 추구하는 마천루 사이에서 혼자 형형색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혼자서 오랜 옛날에 박제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의 향수를 불어 일으키는 것인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은 많았습니다. 잘 가꾸어진―딱 보기에도 가짜 식물이 아닌 것 같은―화분들이 여러 개 밖에 놓여 있었고 심지어 안에도 화분 여러 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야외 테이블에는 눈도 주지 않고 익숙하게, 유리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딸랑하고 청아한 도어 벨 소리가 들립니다. 카페 안에는 100년은 더 된 옛날 음악이 나른하게 퍼지고 있었고요.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카운터 근처를 빗자루로 쓸고 있던 남자가 허리를 일으키며 인사합니다. 연한 금발에, 카페 라떼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연갈색의 피부를 가진 남자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크고 또렷한 초록색 눈동자는 반쯤 신기함을 담아 유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도 따라서 유리를 쳐다봅니다.
그렇네요. 검은 라이딩용 가죽 자켓에 검은 옷으로 몸을 돌돌 감은 유리는 이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카페와 조금 많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몇몇 손님들은 유리를 흘끔거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직원이 놀란 이유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
유리는 친절한 가게 직원의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얼굴을 알 정도면 단골일까요.
“뭐로 드릴까요? 초코 라떼랑―.”
계산대 앞에 선 직원이 저를 쳐다봅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것이 마치 제 주문을 기다리는 듯이요.
아니, 잠깐.
초코 라떼?!
저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유리를 쳐다봤습니다. 유리는 팔짱을 끼고 표정 없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원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리, 초코 라떼를 마셔요?”
내 질문이 그를 거슬리게 만들었나 봅니다. 굵은 눈썹 하나가 꿈틀, 합니다. 싸늘한 눈빛이지만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앗, 아닌가. 다시 절 노려봅니다. 무서운 눈빛입니다. 저는 얼른 고개를 돌려 변명하듯 말합니다.
“전 안드로이드…… 라서 인간이 마시는 음료를 마실 수는.”
유리는 순간 당황합니다. 제가 안드로이드라는 걸 고려하지 않았나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한 직원이, “저희 카페는 안드로이드 메뉴도 있어요.” 하고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한참 고민하다가, 안드로이드용 홍차를 골랐습니다.
적당히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저와 유리는 앉았습니다. 저희가 주문한 음료는 금방 나왔고요. 유리는 초코 라떼를 홀짝거리다가, 저를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부담스러운 눈빛이지만 피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저 또한 유리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눈싸움을 하자는 건가 싶어서요. 의외로 시선을 피한 건 유리였습니다. 유리는 땅으로 시선을 떨굽니다.
“……. 아무 기분 안 들어?”
“?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유리가 절 뚫어져라 쳐다 본 거 말하시는 건가요.”
“그런 거 말고.”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 짜증난다는 듯이 툭 내뱉은 유리가 잠시 관자놀이를 부여잡더니……. 다시 더없이 상냥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아무 기억도 안 떠올라? 블리스.”
“……모르겠습니다.”
“기시감이라도 좋으니까.”
“기시감이라면 조금 느껴지려나요…….”
조금 흐릿한 기억에 가깝습니다. 이게 진짜로 있었던 일일까요? 현대인들이 늘 겪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반짝거리는 햇빛도 따뜻하고 분위기도 좋고요…….”
다정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머무는 카페. 제집 같은 포근함이 공기 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애교를 부리는 검고 흰 얼룩무늬의 고양이도 귀엽습니다. 저와 누군가와 이곳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분명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본 블리스의 기억일지, 아니면 지금 제가 그냥 상상하는 것에 불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 같습니다. 계속 그 창고에 잠들어 있었으면 아마 이런 건 평생 느끼지 못했겠죠. 어쩌면 유리가 제게 선물해 준 순간입니다. 기분 좋은 설렘이 제 모든 톱니바퀴를 돌고, 돌고,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기쁜 순간을 연주하고 싶어요. 분명 지금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최상의 곡을 들려줄 수 있을 텐데.
“너, 너…….”
멍한 목소리로 유리가 절 부르는 소리에 저는 몽롱한 상상에서 깨어났습니다. 유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입니다. 아직도 얼굴이 붉네요. 초코 라떼를 마시는 게 그렇게나 부끄러웠을까요?
“왜 그러시나요?”
“얼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말하다 말다니. 싱거운 사람(물론 유리와 이 단어는 너무나도 안 어울립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립니다. 바닥 난 초코 라떼가 보입니다. 빨리도 마셨네요. 저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화로운 한때였습니다.
시간이 됐다고 느꼈는지 유리는 저를 끌고 또 어디론가로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처음은 음악 홀이었습니다.
유리는 이곳에서 제가 연주를 자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매에는 뿌듯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유리는 제법 저와 친밀한 사이였나 봅니다.
무대와 객석은 제법 넓었습니다. 저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물론 기억에 있지만, 실제로 객석을 체감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니까요.
저는 한 번, 눈을 감고 연주를 하는 ‘블리스’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곡을 연주하는 ‘저’를 상상했습니다. 무슨 노래를 연주하면 좋을까요. 마침내 저는 그 쓸모를 다 할 수 있어요.
상상만으로도 감격입니다.
손가락으로 팽팽한 현을 잡으면, 활로 현을 긁을 때마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좋습니다. 바이올린의 몸통에서부터 뻗어 울려 나가는 이 소리는, 이 홀을 가득 채울 거에요. 객석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겠죠, 사실, 가득 차 있지 않아도 좋습니다. 들어 주는 이는 한 명만 있어도 좋아요. 그게 심지어 제 앞의 이 남자……. 유리뿐이래도요.
어쩐지 이 남자는 제 곡을 진지하게 들어 줄 것 같거든요.
“유리도 제 노래를 들었나요?”
“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이, 유리가 눈을 감습니다.
“가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네 곁에 있는 관객이었지.”
“……제 보디가드였군요?”
그런 말을 들으니 유리의 체구가 제법 실감이 납니다. 동시에 유리가 저를 복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안심도요. 보디가드 유리라.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제법 잘 어울렸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제 물음에 유리는 한참을, 한참을 먹먹한 눈동자로 저를 바라봅니다. 간신히, 처참한 말을 내뱉듯이, 유리가 속삭였습니다.
“……쓸모없는 보디가드였어.”
그러고는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가자.” 하고 절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유리가 그날 이끌고 간 곳에는 박물관도, 미술관도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아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잔뜩 들떠서 돌아다니면, “잠깐, 혼자 말도 없이 돌아다니지 마!” 하고 유리가 어쩐지 안절부절하는 얼굴로 제 팔을 잡았습니다.
“뽈뽈거리는 토끼 같긴…….” 183cm의 남성체 로봇에게는 말도 안 되는 비유를 들면서요.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이라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리는, 유독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멍하니 몇 분이고 서 있으면 같이 옆에 서 있어 줬어요.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조금 퉁명스러운 어조지만, 자세하게 설명해 줬구요.
아, 이건 놀라운 일인데요. 밖에서 시간을 잔뜩 보내고 들어와서, 씻고 나서 숙소에서 잠을 잘 때면 유리는 또다시 다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제게 더없이 다정한 태도로,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면서요.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쓸어내리며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유리에게 저를 지키지 못했나요, 하고 물어보려다가, 그러면 유리가 더욱 슬퍼할 것 같아서 꾸욱 참았습니다.
저는 얼마나 유리와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유리가 말한 제가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고요.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하기에 밤의 유리는, 너무 처량해 보입니다.
그리고 슬픈 눈동자로, 잠에 빠져들고 마는 유리를, 저는 어쩐지 떨리는 마음으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