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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화

     

 

 

자기부상형 바이크를 타고 남자는 빈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저는 그 뒤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바이크를 버리고 또 한참 걷더니(제가 인간이었다면 힘들어서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만 하루가 꼬박 지났으니까요. 남자는 묵묵히 걸었습니다), 대중교통의 무수히 많은 인간, 안드로이드 사이에 껴서 골목길로 가다가, 마침내 어느 호텔의 승강기에서야 한마디를 했습니다.

 

유리 살티코프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남자는, 아니, 유리 살티코프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계속 빤히 바라보던 제 시선을 느낀 걸까요?

그야 당연합니다. 가면서 저는 끊임없이 유리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귀찮다는 듯이 무시했을 뿐입니다. 아예 더 떠들면 전원 끄고 데리고 간다.’고 저를 협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전원을 끄고, 잠든 상태를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참 잠들어 있다 깨어났으니까요.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야 조금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줄곧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습니다.

 

살티코프 씨는 절 데려가서 어떻게 할 셈인가요. 장물아비한테 팔 생각인가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그 창고에는 저보다 훨씬 더 귀중하고 옮기기 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금괴나, 보석, 미술품, 유물 같은 것들. 유리 살티코프는 그런 것들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오직 저만을 빼 온 것입니다.

제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창고에서 오직 저 하나만을 빼 왔으니, 제가 도망간다면 분명 잡힐 테니까요.

 

유리.”

유리?”

유리라고 불러.”

 

승강기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걸까요? 유리는 매너가 없군요. 승강기가 금세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찹니다. 제가 인간이었다면 기침을 했을 거예요.

유리는 제 말에 대답하지 않고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터벅터벅 걸어 나갑니다. 담배 연기가 그의 뒤로 흐릅니다.

 

유리.”

저는 다시금 그를 쫓아가며 불렀습니다. 혼잣말처럼 속삭이듯 불렀는데도 그는 끼익, 멈춰 섭니다. 이쪽을 돌아보지 않고 유리는 말했습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제가 해야 할 일이요?”

그래. 네가 꼭 해 줘야만 하는 일. 그걸 하고 나면…….”

 

유리는 한참을…….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퍽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리는 돌아서 아직도 승강기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제 손목을 휙 잡아챘습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와.”

 

하고는 저를 끌고 가듯 다시 걸었습니다. 미간을 저렇게 찌푸리고, 힘이 들어간 턱 끝 하며, 원래도 험악하게 생겼는데. 화가 난 걸까요. 쓸모없는 기계가 괜한 걸 물어서. 어쩌면 유리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뒷말을 꼭 들어야 합니다. 제 처우가 걸린 일이니까요.

 

하고 나면요. 유리, 당신이 시킨 일을 하고 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

끝까지 얘기해 주세요.”

 

졸지에 저는 빠른 걸음에 맞춰 걸어야만 했습니다. 유리는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요.

 

그러면 그때야말로 절 팔 건가요? 아니면…….”

 

말끝이 흐려집니다. 유리도 저를 창고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둘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의 핵심 코어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 마냥, 지끈거렸습니다. 괜찮습니다.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영원히 잠들어 있었을 수도 있었는걸요. 그걸 깨운 건 유리니까요, 뭐가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아마도요…….

 

호텔 방 문이 열렸습니다.

 

그럴 리가.”

 

유리는 그렇게 작게 대답하며 저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잠깐 올려 본 유리의 얼굴은 분명 화난 표정이지만……. 저에겐 굉장히 슬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일주일 동안 겪었던 일의 서곡입니다.



유리는 그대로 씻으러 들어갔습니다. 맘대로 있어. 나가지만 말고.” ―그런 말을 했기에 저는 호텔 방 이곳저곳을 구경했습니다.

신기합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침대 위의 이불을 한 번 쓸어 봅니다.

저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간 바이올리니스트, ‘블리스 플레쳐의 카피입니다. 사람의 성격을 이루는 데에는 기억도 큰 역할을 하기에, 그의 기억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갖고 있어도 확연히 그것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격을 이루는 무의식을 구성할 뿐, 실제로 나의기억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저 데이터일 뿐이지요.

어쨌든 블리스 플레쳐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여러 고급 호텔을 돌아다녔다는 뜻입니다. 그 기억도 제 양자 뇌 속에 고스란히 존재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드라운 이불 시트를 만져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온전히 제가 체험한 일이니까요.

 

얌전히 있었군.”

 

샤워가 끝났는지, 유리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나왔습니다. 머리를 올리고 있었는데, 앞머리를 내리니까 인상이 조금 유순해 보이는 것 같기도…….

몸은, 뭐랄까……. 두툼한 몸입니다. 저는 제 모델이 된 인간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에 마르고 길쭉한 체형인데요. 유리는 마치 제가 두 사람은 있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근육도 선명합니다. 가슴 근육도, 배의 근육도 덩어리진 네모난 덩어리들이 촘촘히 짜임새 있게 상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저런 거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블리스.”

 

유리가 절 부르더니 터벅터벅 걸어옵니다. 침대 매트리스가 푹 꺼지는 느낌이 듭니다. 제 오른쪽에 앉은 유리가 절 쳐다보고 있습니다. 안면 근육을 인식해서 표정을 분석해 볼까요. 걱정하고 있는 표정 같습니다. 저를요?

 

걱정하지 마.”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요. 로봇이 걱정할 리가요. 저는 아무 말 없이 유리를 쳐다봤습니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맞춰 깜빡거리도록 설계된 눈꺼풀을 감았다 뜨면서요.

 

걱정…….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아요.”

거짓말이군. 방금 한숨 쉬었잖아.”

제가요?”

 

한숨…….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나 봅니다. 그건 유리의 몸이 조금 부러워서 그런 거였을 텐데. 저런 몸이라면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저도 바이올린 연주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기체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 걸 굳이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왜인지, 전과 다르게. 유리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래.”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제 귓가에 머리카락을 넘겨주었습니다.

 

그저 누굴 좀 만나 주면 그만인 일이야.”

폭력적인 일은 아니죠?”

 

왠지 이 남자는 폭력이 어울립니다.

암살, 매장, 혈흔, 살인, 묘비…… 지옥. 그런 단어들이요. 유리는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러나 입가에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 같은 미소를 짓습니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구요.

 

너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거야.”

제가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인지 들으면 안 되는 건가요?”

. 안 돼.”

어째서인가요?”

 

유리는 계속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부드럽게……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창고에서 먼지투성이로 있었던 머리카락인데도 상관없다는 듯이, 익숙한 손길입니다.

 

너라면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도망이요?”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도망가고 싶거든요. 유리가 제 주인의 가족을 전부 죽인다고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를 따라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다정하게 굴어 오는 것일까요. 절 그저 짐짝 취급하며 이송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

 

, 블리스.”

 

순간 유리가 저를 끌어안아 와서, 저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남자의 너른 품이 느껴집니다. 두근… 두근… 유리의 심장 소리가 마치 제 심장 소리 같습니다, 저는 심장은 없는데도요. 영락없는 인간의 육체를 저는 부러워합니다.

 

이제 자자.”

 

그리고 제 이마에 입을 맞출 때는 소름이 다 돋았습니다. 유리에 의해 저는 침대에 같이 누워야만 했습니다.

세상에!

안드로이드도 너무 놀라면 말이 다 나오질 않는군요. 기체 결함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유리가 로봇마저 놀라게 할 정도로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다정해져 버린 탓이에요. 저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유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유리?”

 

제 물음은 어디 아프기라도 하냐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는 역시나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러고 싶었어.”

 

기분이 좋은지 나지막한 작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옆으로 돌아누워 저를 단단히 끌어안은 유리 때문에 저는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일직선으로 딱 붙어 천장을 보고 누워 있어야만 하는데요. 관절이 굳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블리스.”

 

더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을 입에 담듯이, 제 목소리를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달콤하게 속삭이며 유리는 제 가슴을 토닥입니다.

혈기가 왕왕 넘치다 못해 날카롭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처럼 발산하던 목소리와는 달리, 지금은……. 완숙하다 못해 마치 긴 삶에 지쳐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들립니다.

 

안녕, 잘 자. 내일도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