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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유진의 동물화에 대한 고찰

     

앨런.”

앨런은 눈을 떴다.

흰 공간이었다…. 눈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불렀단 말인가?

앨런, 나에요. 여기에요. 뒤를 돌아 봐요.”

유진의 목소리였다. 앨런은 뒤를 돌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매였다.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고, 급강하 할때의 속력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가장 빠른 새로 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새끼 때, 보송보송하게 생겨서 매우 귀엽다. 귀엽고 어벙하게 생겨서… 그는 조류학자이므로 매가 수리보다, 앵무새나 참새와 더 촌수가 가까운 종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매가 말을 할 줄 알고, 그 목소리가 그의 연인인 유진 제라드의 목소리라는 내용은 처음 듣는 지식이다.

앨런, 놀랐나요?”

매가 입을 벌리고 있지만, 매의 구강구조로는(그게 앵무새와 촌수가 가깝다 하여도) 사람의 언어를 내뱉을 수 없다.

아니… 언제부터 네가 매가 되었지?”

돌이켜보면, 앨런은 가끔 유진을 보며 맹금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맹금류를 닮은 것과 인간이 갑자기 맹금류가 되는 것은 천지차이의 일이다.

싫은가요? 하지만 앨런. 나와 닮은 동물들이 많다면서 나를 어떤 동물에 비유할지 생각했잖아요. 당신의 결정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변신했어요.”

이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은 뭐지? 앨런은 제우스를 떠올렸다. 온갖 것으로 변신하는 제우스. 온갖 것으로 변해 연인들을 홀리지 않던가. 어쩌면 내 연인은 제우스였던 걸까? 변신 이야기에 있던 것은 사실 유진의 과거였던 것일까?

어쨌던 간에, 앨런은 딱히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결정을 도와주기 위해서라잖아. 참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은 연인이다.

그래서, 어째서인지 앨런은,

그렇다면 다른 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어?”

라고 물었다. 수려한 형상의, 놀랍도록 연구하고 싶은 매가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 전에 내 날개를 한 번 보겠어요?”

날개뿐이겠나. 앨런은 달려가서 매의 날개와 겨드랑이와 가슴깃털, 꽁지깃 그리고 발톱과 부리까지 샅샅이 훑었다. 아름답고 강한 매였다. 잘 관리된 발톱과 부리에서 강한 자긍심이 보였다. 한창때의 수컷이다.

정말… 정말 멋져.”

벌써부터 멋지다고 하면 곤란한데요. 앨런, 뒤를 보겠어요?”

유진의 말에 앨런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흰 백조 한 마리가 있었다. 뭐지? 다시 뒤를 돌자, 그곳에 매는 없었다.

나에요, 앨런. 이번에는 백조에요.”

백조가 우아하게 목을 들어올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희었다. 앨런이 감탄했다.

아름다워.”

어때요? 앨런이 날 보고 떠올린 조류 중에 백조도 있지 않았나요?”

맞아. 처음에 그랬지.”

앨런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상호 동의도 없이 벌써 백조를 주물러대고 있었다. 백조 유진은 딱히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다.

넌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네가 이렇게 백조로 있다면, 나는 지크프리트인가?”

나는 오데트이며 오딜일까요? 이런. 그렇게 섬세한 연기는 할 자신이 없는데.”

오데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백조야.”

앨런이 유진의 한쪽 날개를 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백조의 몸 여러 군데에 향해 있었다.

이럴 때마다 가끔 유진은 앨런의 첫사랑이 데이지 덕이나 트위티 버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무례하게 느낄 거라 말한 적은 없었지만.

하지만 난 뜨개질에 소질이 없으니, 옷을 만들어 줄 순 없겠는데.”

걱정 마요. 나도 쐐기풀에 당신 손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바라지 않거든요. 저주가 풀릴 일은 없겠군요. 앨런에겐 잘 된 일인가?”

백조가 눈을 감으며 다시 아름다운 자세를 취했다. 물 위도 아니었는데 고고한 모습이었다. 앨런은 부드럽고 기름칠된 깃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감탄했다.

유진, 넌 백조와도 매우 잘 어울려.”

하지만 이렇게 약하고 누군가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동물을 감히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쁘잖아. 오데트.”

앨런은 내가 새 모습인 걸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목소리에서 서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름답기만 한 동물을 나라고 하는 건 곤란해요. 뒤를 돌아 봐요, 앨런.”

앨런은 순순히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흰머리수리가 한 마리 있었다. 앨런이 감탄했다.

이번엔 흰머리수리잖아.”

그리고 역시나 다시 뒤를 돌았을 때, 백조는 없었다. 깃털 한 장 조차도 남겨놓지 않았다.

앨런은 자연스럽게 다시 흰머리수리를 만졌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아름다운 흰 머리를 손가락으로 슬슬 문질러 쓰다듬었다. 눈을 깜빡거리며 흰머리수리가 부리를 살짝 벌렸다.

앨런은 이 모습이 좋은가요? 가장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건 흰머리수리였죠, 맞죠?”

맞아… 네 가문의 인장에도 흰머리수리가 있지 않았던가?”

그랬죠. 잘 기억하고 있었군요.”

정말 멋지군… 잘 관리된 발톱… 강한 날개힘. 모두 멀쩡해.”

흰머리수리의 새끼도 분명 귀여울 텐데.

흰머리수리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금류의 노란 눈동자가 꼭 그와 같았다.

강하고, 아무나 잡을 수 없고. 역시 독수리인가요? 앨런. 내가 날아다니면 좋겠어요?”

항상 날고 있지 않았나?”

그는 오만한 귀족이었다.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비슷할지도 모른다.

창공을 날며 사냥꾼의 등을 잡아채는 모습은 또 어떤가? 약점을 노리는 CEO의 모습일지도 모르지.

계속 날고만 있으면 얼마나 체력 소모가 심한데요. 자주 내려와서 이렇게 앨런 옆에 있어야죠.”

유진이 제 머리를 앨런의 팔에 비볐다. 앨런이 저도 모르게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너무 좋아서였다. 그는 흰머리수리도 사랑했고, 유진도 사랑했다. 그러니까 흰머리수리가 된 연인이 애교까지 부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안아봐도 돼?”

그럼요. 발톱에 다치지 않게 얌전히 있을게요.”

앨런이 유진을 안았다. 음… 정말 좋군… 발버둥치지도 않고… 얌전해. 폭신폭신한 깃털…

아마 20대 초반의 앨런이었다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을 거다. 집에서 앵무새 두 마리를 키우지만 작은 새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감각이 채워졌다.

이런, 앨런. 발등을 보세요.”

싫어, 조금만 더 이렇게 안고 있을래.”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에요.”

앨런이 유진을 끌어안은 채로 발등을 보았다… 무언가가 발등을 쪼는 것 같긴 했는데.

앨런의 발등을 쪼고 있는 것은 보송보송하고 아주 작은 새끼 새였다. 앨런이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황급히 발등 위로 올라가고 있는 새끼 새를 양 손으로 들어올렸다.

, 이건…!”

새끼 새가 좋다고 하긴 했는데 진짜 새끼 새?!

앨런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앉아서 이상한 소리로 울어 대는 것은 피그미팔콘 새끼였다. 25센트 동전만한 크기의 갓 태어난 피그미팔콘.

앨런, 날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흰머리수리가 반쯤 감은 눈으로 앨런을 노려봤다. 맹금류라 그런지 무시무시하다.

“‘피그미팔콘인데? 더군다나 새끼잖아요.”

하지만 앨런의 시선은 피그미팔콘 새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연하이니만큼 가끔 새끼 새 같다는 생각도 했다. 머리에 왁스칠하지 않으면, 평상복을 입고 편한 상태의 유진은 가끔 나이 차이가 실감될 만큼 어려 보인다. 그럴 때는 다 자라지 않은 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건 말하지 말자.

조금 무안한 목소리로 앨런이 말했다.

네 어린 시절 사진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 아주 아기 때 사진 말이야.. 앨범에 있던데.”

어머니가 전부 보여줬군요. 어땠어요?”

예쁘다, 귀엽다보다.. 그 정전기에 머리카락이 죄 올라가 있던 그 사진이 너무.. 너무… 피그미팔콘 새끼마냥 귀엽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리고 피그미팔콘 새끼는 조금 웃기게 생기지 않았던가. 기력 없는 할아버지처럼 생겨서는. 하찮고 귀엽게. 앨런이 흑…웃음과 울음과 기쁨과 귀여움을 참았다. 피그미팔콘 새끼에게 뽀뽀하려는 마음을 참아야만 했다! 너무 작지 않은가. 피그미팔콘 새끼 유진이

우엥.”

하고 울었다. 뺨을 비비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앨런이 피그미팔콘 새끼를 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느껴진다.

따뜻하게 있으렴. 따뜻하게.’

앨런이 조심스럽게 피그미팔콘을 쥐고 있을 때,

앨런은 나를, 우리를 새라고만 생각했나요?”

흰머리수리가 말했다.

아니, 털동물도 가끔 생각하긴 했지만…….”

어떤 거였어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보여줄 것 같은데.”

그럼 한 번 뒤를 돌아봐요.”

앨런은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지 않았다.

새가 더 좋은데…….”

그리고 손 안의 아주 작고 여린 갓 태어난 새끼 피그미팔콘 유진도 없어질 것 아닌가.

그 피그미팔콘은 성장하려면 아주 오랜 기간이 남았다고요.”

그러자 앨런의 양심이 찔려 왔다. 지금도 다 성장하지 않은 보송보송한 유진(인간)을 데려간 것 같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죄책감을 느끼란 건 아니었어요.”

…알았어.”

앨런이 아쉬운 발걸음으로 비척비척 뒤를 돌았다. 손에 있던 온기가 사라져갔다.

뒤를 돌자 백마 한마리가 있었다. 멋진 백마였다.

말이 푸르릉 소리를 내며 앞다리로 바닥을 한 번 긁었다.

백마군.”

앨런이 날 말이라고 생각해주다니. 당신을 태우고 달려나갈까요? 내 위로 올라탈 거에요?”

앨런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이들에게 말이라는 동물과… 그로 인한 여러 사고들을 고려하면, 말이 된 유진이 평상시처럼 섹슈얼한 농담을 하는 것을 막아야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타 보고 싶긴 한데, 안장도 등자도 고삐도 없잖아. 떨어지면 어떡해?”

솔직히 말하자면 앨런이 귀족이고 승마 교육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말을 덥썩덥썩 탈 정도는 아니었다. 아예 제 말이 있는 유진이라면 몰라도.

아쉽네요. 앨런을 태우고 달리고 싶었는데. 앨런은 내가 왜 말 같다고 생각한 거에요?”

백마 유진이 또 바닥을 긁었다. 앨런이 달래듯 백마의 목을 쓸어내렸다. 부드럽고, 잘 관리된 털이었다.

유진, 너는 백마를 키우고 있잖아. 그 백마를 타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려서…….”

사실 처음 같이 잤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건 절대 말하지 말자. 앨런이 결심했다.

둘 다 아주 멋진 모습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종종 백마를 타고 당신 앞에 나타나야겠어요. 왕자처럼.”

백마가 다그닥다그닥 발소리를 내며 앨런 주위를 돌았다.

꼬리마저 잘 손질된 듯 정갈했다.

하하. 이미 넌 충분히 왕자다운데… 말이 되어도…….”

왕자Prince 지위는 없지만요. , 앨런이 날 타고싶어하게 만들죠.”

백마가 앨런의 등 뒤를 스쳐지나갔다가, 다시 앨런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등 뒤를 지나가며 보이지 않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백마의 등에는 날개가 솟아 있었다.

페가수스?! 페가수스잖아!”

앨런이 깜짝 놀라 백마의 날개를 덥썩 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날개였다.

어때요, 멋지죠? 페가수스에요.”

유진이 뽐내거나 말거나, 앨런의 눈에는 날개만 보였다.

세상에, 페가수스라니. 페가수스라니….”

앨런이 중얼거리며 홀린 듯 날개에 뺨이며 손바닥을 비비고 만지고 떡 주무르듯이 만져 댔다. 특히 연결부위를. 부드러운 날개는 가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생물학자로서 환상의 생물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환상 속 생명체를 경시하는 인물이 아니었고, 아직까지도 크립티드를 몰래 좋아했으며(유진은 사실 몰래 알고 있었다), 공룡과 몬스터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페가수스의 날개는 실존할 수 없어. 그렇다면 팔이 네 개에서 진화한 셈이 되니까. 날개는 팔이거든. , 이런 날개로는 당연히 날기 힘들고. 정말 환상의 생명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페가수스라는 존재를 열망했지…….”

앨런, 콧김이 나오는 것 같아요. 유진은 그 말을 삼켰다. 그저 조금 더 아름다운 자세로 앨런에게 머리를 비빌 뿐이었다.

유진 제라드가 단순한 아름다운 백마일 리가 없잖아요. 페가수스 정도는 되어야겠죠.”

오만한 목소리로 유진이 말했다. (앨런은 더 이상 동물의 구강구조와 인간의 목소리 같은 자잘한 것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맞아. 유진 제라드라면, 그래, 페가수스 정도는 되어야겠지… 정말…. 멋져.”

그런데 날개가 달려 있으면 어떻게 타지? 그리고 187cm의 건장한 성인 남성인 앨런 유니우스가 타게 되면 더더욱 못 날 것 같다는, 과학자로서의 당연한 추론이 떠올랐다.

페가수스를 모티브로 한 쥬얼리 콜렉션을 낼까요? 남성 소비자를 위해 시계와 콜라보해도 될 것 같고요. . 그런데 앨런, 왜 안 타는 건가요? 당신을 위해 이렇게 거대한 날개까지 달았는데. 아름답다고 감탄했잖아요.”

과학자로써… 말이 이렇게 열량 소비가 큰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다고 해서 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을 것 같아서…. 날개가 무게를 견디지 못할 텐데. 어깨 근육이 더 발달해야 하지 않나?”

하아.”

한숨을 내쉰 유진이 툭툭 고개를 숙여 머리로 앨런의 가슴을 건드렸다.

이미 내가 동물이 된 시점에서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사람 말도 하는데, 하늘을 못 날겠어요? 얼른 타 봐요, 앨런.”

백마, 아니, 페가수스 유진이 종용했다.

기승위는 싫어요? 앨런이 부끄러워했었나? 요즘 꽤 능숙해지지―

…잠깐! 잠깐.”

홀린 듯 날개를 쳐다보던 앨런이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유진의 머리를 양 손으로 잡았다. 얼굴이 살짝 부끄러워진 것을 보니 농담이 제대로 먹힌 듯 했다.

말 상태로 그런 농담을 하는 건 금지야. 진짜로. 경찰에 끌려가고 싶지 않아. 내 사회적 이미지를 지키고 싶으니까.”

앨런이 안 타면 계속 할 거에요.”

말 상태가 아니면 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유진이 다시 머리를 앨런의 상체에 부볐다.

거대하고… 뜨끈하고… 귀가 귀엽다. 푸륵거린다. 쫑긋거리는 귀가 부드럽다. 앨런이 유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알았어. 탈게.”

앨런이 한숨을 쉬었다. 유진은 앨런이 탈 수 있도록 몸을 낮추었다. 그래도 키가 있고 승마했던 적이 있어 앨런은 어렵지 않게 유진의 위에 탈 수 있었다.

어때요? 멋지죠.”

그래… 생각했던 것처럼.”

이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질 거에요.”

앨런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진이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개가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날개가 날갯짓을 하는 통에 바람에 앨런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오늘은 공들여 세팅한 것이 아니니 괜찮다. 그보다, 그깟 머리카락보다 페가수스를 탈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유진…!”

앨런이 그의 이름을 한 번 불렀을 때, 이미 페가수스는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온통 흰 공간에서 굳이 날아 봤자… 라는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어느새 앨런은 아래로는 숲이 보이는, 광활한 창공을 날고 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그를 스쳐지나간다. 무서워서 유진의 목을 끌어안고 있지만, 동물을 타고 나는 경험은 처음이라, 앨런은 눈을 반짝거리며 경치를 구경했다.

당신이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언제부터 새를 좋아했었는지 한 번 더 이야기해 줘요.”

유진은 오래 전 앨런으로부터 들었던 그가 새를 좋아하던 이유를 다시 꺼냈다. 하늘을 날고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바람에 앨런은 대화하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한다면, 하늘을 날고 있을 때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수미상관처럼.

어렸을 때… 아파서… 병실 침대와 집의 침대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어야만 했어. 걷지 못할 때도 종종 있었지. 그 때마다…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나도 새가 되었으면 했어. 날아가고 싶었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앨런이 말끝을 흐리며 유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실제로 바람이 너무 강해, 생리적으로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날아가며 하늘을 바라보는 건….”

어때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죠?”

후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평생 날아다니고 싶어.”

앨런이 유진의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부볐다.

한참 하늘을 날던 유진은 천천히 착륙했다. 숲을 지나 나온 절벽 맨 꼭대기였다. 조심스레 페가수스에서 내린 앨런이 유진의 목을 고맙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 앨런. 당신의 전문분야에요. 당신은 새로운 생명체, 환상의 생명체를 찾고 싶어했죠? 얼른 이 둥지 근처들을 찾아 봐요.”

유진의 말에 앨런이 어리둥절해했다.

새로운 생명체?”

분명 박사로써 엄청난 대발견이긴 하겠지. 명예욕과 인정욕이 들끓었다.

둥지가… 엄청나게… 거대하군.”

그가 내린 절벽을 조금 걸어가자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거대한 둥지가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조류? 알바트로스보다? …혹시 천둥새?!”

앨런이 둥지로 뛰어갔다. 등 뒤에서, 페가수스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앨런은 천둥새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해리 포터 시리즈, 신비한 동물 사전도 세 번이나 돌려 봤다… 천둥새가 나오는 그 부분만.

안타깝게도 천둥새는 아니에요.”

앨런의 바로 앞에 착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먼지가 날렸다. 거대한 게 쿵, 하고 착륙하는 소리에 앨런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미국 피가 흐르잖아요?”

우아한 모습으로 그에게 걸어오는 것은 거대한 그리핀이였다. 앨런이 그리핀(혹은 그리폰)이라고 생각한 것은, 하반신이 사자의 하반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반신은 날개 달린 독수리인 환상의 생명체 그리핀― 유진이 앨런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리핀이구나.”

맞아요. 가끔 히포그리프랑 헷갈리던데, 앨런은 역시 바로 알아보는군요.”

그야 어린 앨런은 환상의 생명체 도감을 줄줄 외울 때까지 읽고 다녔으니까. 사실 다 큰 다음에도 앨런은 그런 걸 좋아했다.

사자의 하반신이니까.”

맞아요. 내가 털달린 동물이라면 말보다 사자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렇다기에는 덜 북슬북슬하니까. 하지만 사자답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은 아니야.”

. 너무 깔끔 떨어서인가. , 그리핀은 창공의 왕 흰머리수리도, 백수의 왕 사자도 다 갖고 있어서 나는 마음에 들어요. 앨런도겠죠?”

그래, 유진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앨런은 이미 그리핀을 샅샅이 뜯어 보고 만지고 있었다. 두려움은 거세된 것처럼. 괴수인데도 앨런에게는 연구욕이 더 중요했다.

앨런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해. 이 자연스러운 연결부위… 어떻게 상반신은 조류고 하반신은 포유류일 수 있지?”

사자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어서 아름답다고도 해주세요.”

아름다워.”

앨런이 즉답했다.

멋져. 대단해…! 믿기지 않아. 놀라워. 신비롭고…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이과 앨런이 최대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

유진이 만족한 듯 앨런 옆에서 몸을 비벼 댔다.

그리폰은 그야말로 앨런의 꿈의 집합체였다. 앨런은 거대한 날개를 한 번 날갯짓해달라고 부탁했고, 튼튼한 다리를 훑었다. 앨런의 입에서 관찰 결과가 줄줄줄 흘러나왔다.

날개는 강하면서 탄력있고, 사자의 다리는 재빠른 순발력을 보여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흰머리수리의 머리이니 당연히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겠지. 무척 기능적인 신체구조야. 대단해! 사람이 상상한 키메라인데도.. 신이 창조한 생명체보다, 살기 위해 진화한 생명체보다놀라울정도로강하고아름다워…

앨런, 숨 쉬면서 말해도 돼요.”

흑흑.”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만 감격에 울음소리를 내며 앨런이 그리핀을 끌어안았다. , 이 짐승 냄새. 물론 향긋한 향이 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앨런은 그것도 좋았다.

내가 거대한 블루 다이아몬드 쥬얼리 세트를 선물했을 때보다 좋아하는 것 같네요.”

그 때도 좋긴 했어.”

하지만 내가 그리핀이 된 쪽이 더 좋은 거죠?”

그리핀을 발견해서 좋은 것인가?

아니면 유진이 그리핀이 되어서 좋은 것인가?

조금 다른 문제이긴 했지만, 앨런은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꿈만 같아.”

아직 그런 말을 내뱉기엔 일러요. , 앨런. 그리핀이 너무 좋은 모양이군요.”

앨런이 말없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핀이 된 나를 조금 더 만끽하세요.”

앨런이 고개를 더욱 힘차게 끄덕였다. (이제 슬슬 이런 짓을 하면 담이 올 나이인데.)

너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다음은 조금 있다가 보도록 해요.”

유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앨런도 그 옆에 앉아 그리핀을 만지고 쓰다듬고 분석하고 깃털도 보며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앨런은, 그리핀 유진의 옆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하늘의 해가 점점 아래로 가라앉고, 주홍빛 노을이 되어간다. 유진은 날개 한 쪽을 펴, 기대 앉은 앨런을 감싸안았다. 새의 깃털이란 푹신하고 따뜻하다. 밤이 되어가도 쌀쌀함을 느낄 수 없다.

유진, 네 깃털을 가져다가 패딩을 만들고 싶어.”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말인걸 앨런도 알고 있었지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진심이었으니까. 언제나 진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앨런이었지만 동물에게는 다르다. 지금의 유진을 일반적인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아무튼 그랬다.

날 털 뽑힌 닭처럼 만들 건가요?”

자연스럽게 빠지는 깃털만 모은다고 약속할게.”

앨런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죠, 탈탈 털려서 칠면조 구이같은 모양새가 되더라도…….”

유진이 시무룩해하며 앨런에게 장난쳤다.

앨런은 하하 웃더니 유진의 몸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그런 농담은 어디서 배웠어?”

있어요, 나의 친우, 에릭이라고…….”

에릭?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친애의 의미로 유진이 눈을 감고 앨런에게 부리를 부볐다. 부리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앨런은 부리 아래와, 이마를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람 팔뚝보다 더 큰 맹금류의 다리, 날카로운 발톱은 얌전히 모아져 있다. 악력이 강해 보이는 부리도 아무렇지 않게 만지던 앨런이 머리를 기댔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군….”

그건 안돼요, 앨런.”

그리핀 유진이 진지한 얼굴로 정색했다.

그럼 난 평생 그리핀 모습이어야 하잖아요.”

하기사 인간의 손을 쓸 수 없다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앨런이 기간을 조정했다.

, 그럼… 한 10년 정도…?”

앨런.”

아하하…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네 잘생긴 얼굴을 보지 않으면 곤란해.”

농담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유진이 투덜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앞다리를 쭉 뻗고, 몸을 길게 늘리며, 아름다운 형태로. 날개를 퍼덕거렸다.

여기 영원히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또 있어요. , 앨런. 이대로 만족하면 안 돼요.”

그리핀이 등 뒤에서 앨런을 풀숲으로 밀었다. 앨런은 질질 끌려 풀숲으로 걸어갔다.

? 이미 만족했는데….”

만족이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앨런은 너무 예민하고 약하고.”

사람이 아닐 때에는 그런 농담 안 하기로 했잖아.”

? 난 그런 의미 없이, 정말 진심으로 한 말인데. 앨런. 변태.”

솔직히 이번 건 그렇게 생각한 자기 자신이 변태가 맞는 것 같아서 앨런이 입을 다물었다.

푸륵거리며 유진이 멈춰섰다.

왜 더 안 미는…?”

앨런이 더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땅이 와장창 무너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발 밑의 디딜 것들이 없어진다. 앨런이 기겁했다. 본능적으로 그리핀을 잡으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 잠까안! 유진…!”

앨런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유진이 웃었다.

미끄럼틀이니 걱정 마요. 당신은 몸이 약하니까!”

, 으윽?!”

 

슈우우욱…….

앨런은 워터슬라이드마냥 엄청난 경사의 돌과 흙으로 된 통로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니, 정말로 워터슬라이드였다. 나름 매끄러운 돌과 흙이었지만 그래도 울퉁불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내려갈 때마다 꼬리뼈와 엉덩이가 아파 왔다… 따끔따끔해… 바지가 조금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잡고 매달릴 만한 것도 없었다. 흙이 매끄러워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앨런은 마치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내려갔다. 천장은 동굴 같았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천장이 올라갔다.

결국 다 도착했을 때, 앨런은 워터슬라이드와 미끄럼틀 같은 건 더이상 타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앨런은 종유석이 매달린 동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건… 동굴이군.”

박쥐들은 없는가? 동굴은 어떻게 빠져나가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이런, 손님이군요.]

유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기에는 너무 크고 울려퍼졌다. 동굴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다리던 손님일까요? 맞춰 보죠. 앨런?]

동굴의 어두운 부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앨런은 빛이 들지 않는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손전등 같은 것도 없어서, 순간적으로 공포심이 밀려왔다. 유진의 목소리는 동굴에서 울리고, 울리고, 울려서 귀가 먹먹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너무 겁먹지 마세요, 내 사랑.]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천장의 자그마한 구멍으로부터 들어오는 달빛에 은빛 비늘이 반짝거린다.

거대한 몸집의 파충류가 소리 없이 동굴 안쪽에서 네 발로 나온다. 등에는 거대한 파충류의 날개가 있다. 발톱이 달린 다리는 튼튼해 보인다. 거대한 머리에는 날카로운 금색 눈이 달려 있다. 다문 입을 열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이빨들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앨런은 나타난 괴생명체의 입을 다물면 완전히 이빨들이 보이지 않는 구강구조가 악어보다 도마뱀, 공룡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입술이 있는 것이다.

헉… 드, 드래곤.”

그래, 저건 드래곤이었다. 화이트 드래곤이건, 실버 드래곤이건.

학자로서의 탐구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파충류가 무섭지 않을 수 없다.

앨런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몇 발자국 뒷걸음질쳤다. 아니, 드래곤이 몸의 절반 정도를 드러냈을 때에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앨런이 공룡과 드래곤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공룡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도 본능적인 공포심이 거세되지 않은 한, 티라노사우르스를 만나면 겁에 질리고 말 것이다.

[그래요. 드래곤이에요.]

긴 혀가 입가를 핥는다. 황산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착각일까? 울려퍼지는 저음이 생명체의 공포를 끌어올린다.

[너무 겁먹지 말라니까요. 앨런을 먹을 생각은 없어요. 상처입힐 생각도요. , 이런. 너무 무서운 모습인가? 유노처럼 귀여운 파충류였다면 조금 괜찮았을까요. 앨런이라면 분명 드래곤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진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너무 거대했기에 꼬리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 유진. 유진이야?”

[그럼요. 난 여전히 유진이지요. 그리핀에서 만족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어요. 난 드래곤이에요.]

드… 드래곤까지 된다니.”

그러나 그리핀 때와 같이 덥썩덥썩 만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 앨런은 조류 전공이지 파충류 전공이 아닌것이다.

왜 갑자기 지금 코모도왕도마뱀의 독이 든 침이 생각나는 것일까? 앨런이 찐따 대학생 시절 티모시와 하던 DnD 시리즈의 황산을 내뿜는 드래곤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어서 만져 봐요. ! 이전까지의 나는 모두 빵 반죽하듯이 만져 댔잖아요.]

. 그건 부정할 수 없군.”

앨런이 조금 침착해졌다. 그리핀까지 아주 주무르고 만져댔으니. 용이 자신의 주둥이? (혹은, 대가리?)를 더 들이댔다. 앨런의 몸통 거의 앞이었다. 자신의 양 손 두 개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깜빡거리지 않는 것 같은 금빛 파충류의 눈동자에 앨런이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그래. 드래곤 길들이기야! 그래, 이건 드래곤 길들이기다. 앨런이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보니, 드래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불필요한 뿔이나 비늘도 없었다. 머리에 달린 뿔과 몸에 나 있는 작은 돌기들은 심지어 금빛이었다.

그래,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실버 드래곤이다! 실버 드래곤은 바하무트를 모시는 선한 드래곤이니까 날 해치지 않을 거야! 냉기 브레스! 마비 가스 브레스! 그러니까 그걸 대비해야 돼! (고맙다 티모시, 찐따 티알피지 동아리원들아… 그래도 워해머는 안 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이지 않은가. 용기를 낸 앨런이 드래곤의 콧잔등을 조금 쓸어내렸다.

[크릉.]

드래곤이 기분 좋은 듯 콧김을 내뿜으며 그르렁댔다. 앨런의 손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꺼끌꺼끌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매끈매끈해.”

[그럼요. 난 잘 관리하는 드래곤이니까요. 무서운 드래곤도 아니고요.]

유노.. 유노를 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멋지다고는 안 해 주나요?]

드래곤이 얌전히 머리를 땅바닥에 댄 채로 앨런에게 말했다.

앨런은 지금까지 자신이 동물이 된 유진의 모습을 보며 계속 감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멋져.”

[?]

……. 아니, 정말로 멋져.”

이제 드래곤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앨런은 드래곤의 큰 몸통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의외로 드래곤 치고는 무거운 느낌이 없다.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날개마저도 아름답게 붙어 있다. 특히나 비늘의 색이 반짝거리며 아름답다. 가장 아름다운 드래곤이 있다면 아마 유진일 것이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드래곤은 네가 처음이야. 하지만 확신할 수 있어. 가장 아름다운 드래곤이 있다면 아마 너일 거야. 내가 다른 드래곤을 몇 마리나 보더라도. 이건 변함 없는 진리겠지. 아름다우며 동시에 경이롭고 멋지군.”

바로 이것을 바랐다는 듯이 드래곤이 눈을 깜빡거렸다. 앨런이 생각하기에 웃는 표정인 것 같았다.

그래… 드래곤들은 원래 오만한 족속. 칭찬해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한다. 그건 선한 드래곤이어도 똑같았다.

드래곤은 가장 강한 존재. 마법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강력한 브레스를 쏘는 마수들의 왕이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봐 왔던 동물들 중에서 가장 믿기지 않고 멋져.”

그리고 조금 공룡 같잖아. 앨런은 공룡을 좋아했다.

솔직히 이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는 내 어중간한 어휘에 신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생명체야… 유진. 넌 드래곤이 매우 잘 어울려.”

[그래요. 그래요. 좀 더 해주세요. 계속 쓰다듬고 칭찬해 주세요.]

앨런은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용의 역린은 턱 아래나 목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정석 아닌가? 역린을 건들지 않게 조심해서 만지자. 겉표면만…….

완전 멋있어. 턱힘도 대단하겠지. 티라노사우르스만큼이나 셀거야. 티타늄 강철도 부술 수 있을지 몰라.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이렇게 경이로운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니. 유진, 다른 모든 환상종보다 군림하는 드래곤이 가장 너와 잘 어울려.”

환상종 중에는 그랬다. , 일반 동물 중에서는 역시 피그미팔콘? 흰머리수리?

[그래요. 난 페가수스나 그리핀 따위 한입에 부숴버릴 수 있죠. 보석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니 정말 유진 제라드와 가장 어울리는 생명체 아니겠어요?]

유진은 드래곤본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앨런이 몸을 기댔다. 파충류였지만 조금 따뜻했다.

[어때요? 드래곤인 나는. 인정할 수 있어요? 내가 동물이 된다면― 드래곤으로 최종 결정인가요?]

음… 그건 조금 고민을 해 봐야겠는데.”

[어째서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내게 학생들이 물었지. ‘애인은 어떤 스타일이에요? 동물로 따지자면.’ 거기서 시작한 거였단 말이야. 그네들이 내게 바란 것은 고양이나 강아지, 크게 봐야 사자나 곰, 여우 정도였지 않았을까. 그리기 쉽고 친숙한.”

[그건 너무 시시한 동물들이에요. 흔해빠졌고.]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했어. 내 사회성이 사자라고 답하라고 했어. 그렇지만 학부생들이니까, ‘내가 조류 전공인 거 모르나요? 흰머리수리에 가까울 것 같군요.’ 라고 대답했지.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던 거야… 유진 제라드가… 고작… 사자나 흰머리수리 따위일 리가 없다고. 그런 거에 비유하기에 너는 너무 찬란하고… 그래. 다이아몬드보다… 귀해.”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던 거군요?]

맞아. 그래서… 유니콘이며 페가수스, 피그미팔콘, 히포그리프… 그리핀. , 드래곤. 뭐든 상상했어. 그렇지만 유진… 너는…….”

앨런이 파충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드래곤 유진은 어느새 몸을 일으킨 채 앨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가지에 비유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로워. 그게 변화무쌍하다는 건 아니야. 그보다는 전지전능이지, 뭐든 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까운 사내다. 너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하는 앨런의 영어 억양이 독일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게 내 결론이야.”

[하하하.]

유진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고개를 들고 웃던 드래곤이 몸을 숙였다.

[앨런이 나를 하나로 정의해주길 바랐는데. 여러 마리로 사는 것은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래요. 이것도 전지전능의 일환이라면…]

유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그렇다기보다는, 메아리가 울려 여러 마리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 곁에 붙어 있어야,]

전지전능해지는

것일까?”

여러 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앨런의 양옆에서, 뒤에서. 동굴의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아름다운 동물들이 보인다.

그것은 흰머리수리요, 그리핀이요, 알리콘과 페가수스와 다 큰 피그미팔콘과 여우와 사자와 매와 고니와 우로보로스와

그런데 왜 이렇게 커지는 거지? 원래 이렇게 컸던가?

드래곤은 부르즈 할리파만큼이나 커 보인다. 흰머리수리도 빅 벤 만큼이나 커지는 것 같다.

앨런, 그러고보니 말하지 않았군요.”

당신은 귀여워요.”

우리도 여럿 생각했죠. 당신만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신은 어떤 동물일까 하고.”

아무래도 고양잇과겠지.”

[랫서 판다도 있었지. 위협하는 자세가 비슷하잖아.]

수컷 공작도 있었고. 앨런은 자주 입잖아요, 공작새 무늬의 셔츠.”

하지만 역시, 제일 어울리는 건, 카라칼.”

뱀 같은 사내니까 뱀도 어울리고.”

조류는 별로야. 알죠?”

[그래도 초록빛 앵무새는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해.]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의견을 내놓는다… 앨런은 더더욱 작아진다. 무섭다. 두렵다. 잡아먹힐 것 같다. 잡아먹힐 것 같다! 왜 이런 공포심이 드는 거지? 나는 학자다! 하지만…… 몸이 떨린다.

그래서 우리가 결론을 내렸는데.”

지금의 앨런은.”

앨런?”

달링.”

[당신, 이렇게 작았나요?]

귀여워라.”

약해.”

나보다 약해.”

내가 먹을 수 있겠어.”

앨런, 내 사랑. 당신은 한입거리도 안 되겠군요.”

하하하하하하.

유진들이 웃는다.

!”

앨런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찍 소리 뿐이다.

[당신은 지금 햄스터니까!]

천하의 앨런 유니우스가 햄스터라니.”

유노가 잡아먹어도 모르겠어요.”

귀여워라. 한 입 거리.”

! ?! 찌익?!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에 살기 위해 비명을 지르는 쥐의 소리를, 앨런은 들은 적이 있다.

그야, 생물학 전공이면 쥐를 이용한 실험을 다들 해보지 않는가.

그런데 햄스터, 햄스터라고? 햄스터?

시력이 서서히 없어진다… 햄스터의 시력은 매우 안 좋으니까. 수염이 파들거린다. 짧은, 존재가치도 없는 듯한 꼬리가 꿈틀거린다. 작고, 약하고, 하찮은 생명!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앨런이 굳어 버린다.

 

[자 아 앨 런 내 입 으 로]

 

앨런이 펄쩍 뛰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잡아먹힌다! 싫어!

그림자들이 점점 가까이 온다… 짐승의 냄새! 포식자의 냄새!

안 돼!

앨런.”

앨런!”

[앨―런]

달링―

앨런!”

앨런, 앨런! 앨런.”

달링. 우리 박사님.”

앨런, 앨런?”

 

 

.

앨런이 몸을 일으켰다.

꾸… 꿈이었나. 꿈이었던 것 같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물이 된 유진이 햄?스터가 된 그를 잡아먹는 꿈이라니 절대 말하지 말자.

빵이 구워지는 냄새가 난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기름이 지글거리는 베이컨의 냄새가.

그래, 창밖은 아침이다. 앨런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엉덩이가 아프다. 어제 했던가? 상관 없다. 그는 꿈 속에서 그에게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줬던 유진을 찾아가려 한다. 그가 의존하는 대상이니까.

유진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다.

, 앨런. 일어났나요?”

유진은 인간이다. 완연한 인간의 모습이다. 앨런은 그를 끌어안고 싶어졌다.

앉아요. 아침밥을 다 해놨어요. 잘했죠?”

유진은 윙크를 한다. 왜 내가 동물이 된 유진을 잘생겼다고 그토록 칭찬했을까? 섬세한 인간의 범위에서 유진이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인 것을…….

고마워.”

앨런이 피곤했던 것 같아서요. , 앉아요.”

앨런은 유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잘 구워진 빵이 이미 접시 위에 올려져 있다.

요즘 요리를 배우고 있거든요. 앨런이 좋아하면 좋겠어요.”

아니, 유진이라면 분명 그가 좋아할만한 요리를 했을 것이다. 앨런이 두근거리며 그의 후라이팬을 기다린다.

무쇠 후라이팬에 있던 것을 유진이 자랑스럽게 앨런의 접시에 올려놓는다. 베이컨과― 생쥐?

하얀 생쥐다. 앨런은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유노에게는 이렇게 큰 것을 먹이지 않지만.

잘 구워진 하퍼에요. 유노처럼 먹기로 했죠. 그래도 역시 굽는 편이 덜 부담을 느끼려나? 싶어서요.”

방금 전까지 햄스터였던 탓인가. 소름이 돋는다.

아니, 진정해, 앨런. 넌 언제나 유노에게 쥐를 급여해 왔잖아. 이건 꿈에서 햄스터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 유진. 아무래도 난 이건 못 먹어. 이건.. 이건 아니야. 사람이 굳이 쥐를 구워 먹을 필요는 없어. 이거 할로윈 장난이지?”

사람이요? 장난?”

어라?

당황스러움에 접시만 바라보던 앨런이 유진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유진의 목은 눈을 부릅뜬 채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어라?

유진의 목 위로 흰머리수리의 머리가 있다. 아주 멋진 흰머리수리다. 부리부리한 맹금류의 눈이 앨런을 무섭게 쳐다본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게 아닌데?

한 입에 꿀꺽 삼키면 되잖아요? 자아, 앨런. 앨런도 어서 카라칼 머리로 갈아 끼워요. 고양잇과는 쥐를 좋아하니까. 우리는 식성이 맞는 부부라서 다행이에요.”

, . 유진.”

……왜 갈아끼우지 않지?

흰머리수리가 고개를 까딱한다.

그는 부리를 벌린다. 꼬리를 잡은 생쥐를 그대로 입 안에 꿀꺽 삼킨다.

앨런? 당신, 햄 스 터 였 어 요 ?”

?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아름다운 유진의 인간 머리는

얌전하다.

안 돼, 안 돼! 내 목은? 내 목의 절취선 은?

나 잘렸었다. 무서워

앨런이 목을 만지려다가 덜덜 떨었다.

앨런은 벌떡 일어나서 도망간다. 도망친다.

도망간다. 도망간다…………

앨런! 어딜 가는 거예요? 앨런! 가지 말아요! 당신의 카라칼 머리가 외로워하고있잖아요…

 

 

 

 

.”

앨런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밖에서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린다. 아침이다.

꿈 속의 꿈인가… 하하. 잠자리가 좋지 않은 게 분명해…….”

침대 옆은 아직 온기가 있다. 밖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유진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셉션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앨런은 가위눌림을 유진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묘하고 기분나쁜 꿈이지 않은가.

앨런! 아침이 거의 다 준비됐어요. 나와요.”

그래, 고마워.”

커피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연하 애인은 부지런하고 다정하다.

그에게만 일을 맡기는 것은 아무리 연상이라도 솔직히 버릇없는 짓이다.

앨런은 천천히 일어나서 식탁으로―

앨런? 거대 우주 햄스터 구이 안 먹을 건가요?”

부엌에 서 있는, 앞치마를 하고 있는, 그의 연하 애인은 아름다웠다.

문제가 있다면 종족이….

드래곤본이잖아.

그는 거실의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엘프잖아, 이거.

하하!”

실성한 웃음을 지으며

앨런은 다시금 도망쳤다.

뒤에서 앨런을 부르는 유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앨런, 앨런! 앨런!

 

앨런!

.

..

앨런, 달링!”

“Yes, Sir! 일어나요!”

짹짹거리는 소리에 앨런은 또다시 일어났다. 헉 소리를 내며.

토닉과 아가페가 앨런 옆에서 알람시계처럼 울어대고 있다. 앨런은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충전 중인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었다. 09:23. 토요일 오전이다. 평상시보다 꽤 늦잠을 잤다.

꿈…. 모두 꿈이었구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묘하게 붕 뜬 생각이 없어지고 오히려 가라앉는다. 지독한 현실감. 아마도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꿈이면 어떡하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아가페와 토닉이 음~ ! 짹짹, 거리며 좋아하고 있다. 아가페와 토닉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현실일 것이다. 거실의 수조에는 유노가 얌전히 자고 있다. 조금 무섭다. 꿈 때문일 것이다. 생물학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금세 유노를 사랑스럽게 보이게 한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혹시 모르니까.”

그는 미친 것처럼 중얼거렸다. 동시에, 미친 것처럼 잡다한 것을 모아두는 곳을 뒤졌다. 인셉션에서는 팽이를 돌려 꿈인지 현실인지 파악했다.

커다란 로마 금화(가짜가 아니었다)를 집어든 앨런이 그것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동전은, 하늘 높이 올렸다가 떨어졌다. 만약 꿈이라면 한 번에 제대로 설 거야. 세로로.

당연하게도, 동전은 가로로 뒷면을 보이며 떨어졌다.

그래, 꿈이 아니군.”

손가락을 꺾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다.

아가페와 토닉은 동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조금 따라하다가, 다시 앨런, 앨런. 하고 따라하고 있다.

그도 이제 유진을 많이 부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 앵무새들이 앨런의 이름만 불러 대고 애교를 부려 대니까.

자신의 이름을 옆에서 불러 대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어제 먹은 멜라토닌이 잘못되었나?

앨런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떠올렸다.

그곳에 실려 있는 아주 유명한 단두대 꿈의 예시도 떠올렸다…

꿈에서 목이 잘리는 꿈을 꿨는데, 실제로 목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그럼 그것이 떨어지는 단 몇 초간, 그는 그렇게 긴 꿈을 꾼 것인가? 꿈이 그렇게 인도한 것인가?

앨런? 일어났나요?”

유진…….”

토요일이라 조금 늦잠을 잔 앨런이 피곤한 얼굴로 나타나자, 유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다…. 꿈들이 희미해지기는커녕 선명하게 기억났다. 앨런은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앨런. 안색이 좋지 않아요. 더 잘래요? 아침은 나중에 먹어도 되니까. 괜히 아침 먹으라고 깨웠나 보네요.”

유진이 다가와서 앨런의 이마를 제 손으로 만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의 온도와 비교했다.

열은 많이 없는데…….”

아니, 아니야..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래. 애도 아니고, 괜찮아. 그냥 꿈인데.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침 먹고 나면 금세 잊을거야.”

앨런이 자리에 앉았다. 생쥐가 아니다. 거대 우주 햄스터 구이도 아니다. 평범하게 구워진 바게트와 프랑스산 고급 버터, 그리고 라즈베리 잼. 서니 사이드 업으로 구워진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 두 줄. 정말 눈물날 정도로 평범한 영국인의 아침식사다.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앨런이 조금 뭉클한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앨런…….”

아니, 잘생기고 부자인 연하 애인한테 아침까지 얻어먹으니 진짜 내가 너무 죄인 같아서 그래.”

별 거 아닌 아침인데요, . 요즘 배우고 있어요. 앨런에게 스파게티를 해주려고요.”

앨런은 잠시 영국인의 요리솜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가, 지웠다.

어쨌든 유진인 이상, 셰프만큼 완벽하게 요리를 해낼 것이다. 그는 그런 자니까. 요즘 배우고 있는 셰프의 이름이 베니엘이었던가?

앨런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바게트에 버터를 발랐다. 잼도 바르고. 한 입 와작 베어물자, 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들이 느껴진다.

정말 꿈은 아닌 것이다.

앨런. 그런데요.”

마찬가지로 바게트 한 쪽을 와작, 와작 단숨에 해치운 유진이 턱을 괴고 앨런에게 말했다.

?”

제 부모님이 오랜만에 뵙고 싶대요.”

, 저번에 뵙지 않았던가. 하기사… 몇 개월 전인 것 같군.”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작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앨런 부모님께 연락 드리지 못했는걸요.”

둘 다 너무 바쁜 사내들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부모님을 뵌 지 오래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진도 앨런도 서운하지 않았다.

유진이 그의 가족과, 앨런이 그의 가족과 만난 적은 몇 개월 간 종종 있었지만 그것조차 따로따로였다.

앨런은 유진의 가족이 그를 찾는 이유를 떠올렸다. 어쩌면 약혼은 이미 했으니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식계획이라거나……. 그러고보니 그의 가족들은 전부 유진처럼 맹금류를 닮았다.

이번에도 제라드 가문의 저택이야? 아니면, 다른 나라의 별장인가?”

음… 비슷한 곳이라고 해 두죠.”

뭐지? 앨런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어디라고는 말하기 힘들어요. 앨런은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그야… 제라드 가문의 사유지면 앨런은 가본 적이 없겠지.

하지만 앨런은 무언가 기묘함을 느꼈다.

착각일 것이다.

월식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유진이 혼잣말하며 창문 밖을 바라본다.

월식?”

신경쓰지 마세요, 앨런. 그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해요. 드레스룸에서.”

, 레스룸? 왜 하필 드레스룸인거야?”

, 멋진 옷을 입고 가야 하니까요.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면.”

그런 거지?”

어쩐지 기묘한 말투에, 유진은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럼요. 내가 골라 줄까요?”

앨런이 안도했다.

나도 골라 줄게.”

앨런은 모른다.

유진의 뒷머리 중 몇 올이, 기묘하게 하늘로 솟아 있는 것을.

그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통신하듯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