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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외전 2

     

 

유리 살티코프와 블리스 플레쳐는 대체되지 않았다. 그들은 고유한 개체이며, 그 옛날 유리 살티코프와 블리스 플레쳐와는 다른 존재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은 AMS-BLESS_FLETCHER_01와 유리-1231 라고 인식되는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이제는 죽어버린, 고故) 유리와 블리스와는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귀여워라….”

 

블리스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물론 기억 속에 큰 개를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지만, 애초에 그는 안드로이드. 털이 달린 살아있는 생명체는 부럽고 귀여운 존재인 것이다. (만약 개가 블리스를 문다면 개의 이빨만 나갈 것이다) 애초에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는 애완동물이란 굉장히 귀한 존재이므로, 안드로이드 블리스가 개를 무서워 할 일은 없었다. 유리는 기억 속의 블리스도 케르라는 개를 같이 키우기 시작한 뒤로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정말요? 다행이네요. 이렇게나 귀여운걸요. 케르라는 강아지도 분명 귀여웠겠죠? 제가 그렇게 겁이 많은 건 아니어서요. 남성체잖아요.” 

 

말하며 블리스는 복실복실하고 작은 요크셔 테리어 한 마리를 쓰다듬었다. 케르, 케르……. 어쩐지 그리운 이름이었다. 그는 유리 살티코프와 만나기 전에 저장된 기억으로 이뤄져 있음에도 그랬다.

블리스는 저번에도 왔던 카페에서 안드로이드용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홍차 향이 나는 윤활유에 가까운 안드로이드용 홍차는 영국 출신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일종의 기호품이었다. 한편 유리는 3월 한정 판매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는데, 99% 초코 스무디에 초코 아이스크림 한 스쿱, 그리고 파베 초콜릿을 아낌없이 올려 놓은 그야말로 초코 덩어리였다

저런 게 맛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블리스는 그것을 쪽쪽 빨아 마시는 유리를 나름 귀엽게 쳐다보았다. 원본 인간인 블리스를 따라 논리적 이해보다는 공감을 주로 하는 그였지만 저런 행동을 보면 사고회로를 조금 돌려서라도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아마도 안드로이드의 본능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단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클론으로 태어난 지 십 년도 채 안 된 유리라면 초콜렛 같은 단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나중에서야 블리스는 원본 유리도 단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실수를 하나 하고 말았다. 블리스는 그만 유리에게 어린이여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날 블리스가 유리가 어린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방식으로 알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였으리라.) 

 

개는 좋지.”

 

초코 스무디를 마시다 말고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가 아니어서요?”

 

공원에서의 대담을 기억하고 있던 블리스가 물었다.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좋아. 사람한테 충성하잖아. 잘 빠진 몸이 멋지기도 하고. (유리는 요크셔 테리어를 한 번 보았다. 둥글둥글해서 라인이 보이진 않았지만 이건 이거 나름대로 귀여웠다) 왜 물어봐?”

유리는 싫어할 줄 알았어요.”

개는 좋아. 고양이가 싫지. 주인도 몰라보고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건 딱 질색이라.”

 

이상하리만치 유리는 죽은 유리의 흔적을 닮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블리스는 논리적 추론으로 개를 좋아하던 것도 그 영향이라면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리는 다시 한번 초코 스무디를 빨아 마시더니, “이왕이면 큰 개가 좋긴 하지. 코카시안 오브차카, 도베르만, 벨지안 셰퍼드, 저먼 셰퍼드, 체코슬로바키안 울프독 같은 것들.”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개에 대해서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 치고는 종 이름을 줄줄 외우지 않는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심지어, 블리스는 처음 듣는 종들이었다. 블리스는 자신의 작은 논리회로를 또 열심히 돌렸다.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인간의 어린 남자아이들은 큰 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그렇구나! 이건 클론 유리와 닮은 게 아니라 어쩌면 남자아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유리는 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네요.”

 

블리스는 완벽한 자신의 추론에 감탄했다. 유리가 귀엽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개 이야기에 눈을 반짝거리는 유리는 강아지 같았다.

한편, 블리스가 단순히 강아지 얘기에 기뻐했다고 착각한 유리는 개를 한 마리 키울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유리 살티코프가 강아지 얘기에 눈을 반짝거린 것은 맞았다.) 

블리스와 유리는 사건 이후로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와 클론은 본체의 기억이 아닌 자기들만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원본, 본체들은 없어졌으므로 그들이 곧 본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소금 사막에 갔으며, 온갖 관광지를 구경하고 다녔고 새롭게 뜨는 일출을 매번 다시 새겼다.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떠오르는 것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클론 유리가 잠깐 잠을 잔다거나 하면서 쓰던 집이 있어서 여행을 가지 않을 때는 두 사람은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네오-런던 할렘가 근처 마천루 사이에 있는 이 아파트는 낡고 더러웠지만 두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클론과 안드로이드에게 짐이 있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자, 유리는 슬슬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이사 가자.”

 

낡은 창고 한구석에 쳐박혀 있던 것보다 백 배는 나은 삶을 살고 있었기에 불만이 없었던 블리스였다. 유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읽던 블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물론 눈을 네모로 뜰 순 없는 법이지만)

 

이사요? 어디로요?”

“2층집, 마당이 있는 2층집으로.”

봐둔 곳이 있나요?”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전부터 블리스에게 말하지 않고 집을 찾아본 유리였다. 원본 유리의 재산은 일부분 클론 유리에게 넘어왔고, 유리가 단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던 블리스의 재산 또한 그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돈을 고스란히 블리스에게 주었기에 그들은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여행이나 다니며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금 시골이긴 한데…….”

오히려 저는 상관 없어요! 시골이 더 좋은걸요.”

 

블리스 플레쳐가 자연을 사랑해서 시골이 좋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유리에게는 설명하지 않겠지만 다분히 유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도시의 스모그와 매연은 심각한 수준이기에, 가뜩이나 담배를 뻑뻑 펴 대는 유리의 폐를 위해서라도 시골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집 말고 가게 부지도 봐 뒀어. 꽃집이 하고 싶다고 했잖아.”

 

사실은 바이올리니스트가 하고 싶었지만, 블리스 플레쳐를 재현한다는 소리만 들을게 뻔했고, 유명해지면 훔쳐가려는 사람들만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리스는 꽃집을 하기로 했다. 카페도 겸하고, 겸사겸사 무대도 있어서 가끔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다.

, 꽃집이면 더더욱 시골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 그러더니 유리는 고개를 까딱였다. 지금 바로 보러 가자는 뜻이었다. 책에 꽃을 말린 책갈피를 꽂아 놓고 블리스 또한 달려나갔다.

 

저는 상관 없어요. 마지막 집이 좋아요.”

……정말로?”

. 주위가 제일 예뻤거든요. 집은 조금 낡았지만, 고치면 되니까요.”

낡은 수준이 아니었는데…….’

 

유리가 말을 삼켰다. 봐둔 집은 총 세 곳으로, 블리스의 꽃집 겸 카페가 될 곳이랑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들이었다. 시골이라고는 했지만 미래사회에서 개발 안 된 곳을 찾기도 힘들어서 백 년 전 과거의 시골에 비하면 그닥 시골 느낌이 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말 시골 구석탱이도 아니었고, 교외라서 블리스는 매우 만족했다.

어쨌든 블리스가 고른 마지막 집은 다른 두 집에 비해서 버려진 느낌이 완연했다. 낡아빠지고 구멍도 숭숭 나 있는 데다가 잔디밭도 무성해서 관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른 두 집은 사람이 살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깨끗했기에 유리는 블리스가 그 집을 고를 줄 알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마당도 제일 넓어요. 제가 장담하는데, 고치기만 하면 그 집이 제일 예쁠 거에요. ! 유리는 고칠 필요 없어요. 제가 해낼게요.”

 

힘들면 집을 수리하는 데이터라도 받으면 되니까요. 저는 안드로이드라 지치지 않으니 저만 믿으세요. 아예 팔을 걷어 올리고 불끈,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블리스였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계약을 하지 않을쏘냐. 유리는 내일 당장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구경하고 차를 타러 이동하는데, 어디선가 끼잉끼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예민한 블리스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법 가까운 곳에서 들리고 있었기에 블리스는 도로 주변의 풀숲을 보았다.

 

?”

유리, 저 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강아지 소리요.”

 

마침 집을 계약하면 개도 한 마리 데려와야지. 로봇 개도 상관없고, 라고 생각하던 유리였다. 무성한 풀들을 대신 젖히며 유리는 블리스에게 방향을 알려 달라고 했다. 블리스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유리의 뒤를 따랐다.

풀숲은 쓰레기장과 이어져 있었다. 도시에서 나온 온갖 폐기물이 교외로 오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쓰레기장은 방치된 지도 꽤 되어 보였다. 발에 걷어차이는 고물 덩어리 사이에서 블리스는 작게 낑낑거리는 소리 쪽으로 계속 향했다.

마침내 블리스가 왠 버려진 차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새끼강아지들을 보았다. 그 옆에는 웬 로봇 개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성체 개, 암컷을 흉내 낸 것처럼 보이는 로봇 개는 다리 한 짝이 없었고 여기저기 부품이 없는 데다가 낡아빠져 있었다. 로봇 개는 당연하게도 세트가 되는 로봇 강아지와 함께였는데, 어미로 보이는 로봇 개가 낡아빠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강아지는 제법 잘 관리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살아있는 강아지 한 마리도 있었다.

 

다시 가동시킬 순 없겠군.”

 

유리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블리스의 마음속에서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죽은 로봇 개는 자신과 세트로 팔리던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버려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찬가지로 어미가 죽은 진짜 살아있는 강아지 한 마리도 거둬서 이 쓰레기장으로 왔을 것이다……. 더 고성능의 지능을 탑재할 수도 있으면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개의 지능 수준에서 사고하느라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개를 생각하니 너무나 불쌍했다.

그래서 블리스는 살아있는 강아지와 로봇 강아지 두 마리를 한 팔에 하나씩 품에 안았다. 두 마리 다 부드러운 털이 나 있었다. 유리는 블리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한 어미 개 로봇을 집어 들었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자고. 이 곳에 묻히기에는 아까우니까.”

 

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강아지가 배고픈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쉬이, 배고프지. 얼마나 배고팠을까……. 강아지용 분유부터 먼저 사야겠어요, 유리.”

그래. 로봇 강아지용 배터리도 좀 사고.”

병원을 두 곳이나 들려야겠네요. 가면 분유가 있겠죠?”

요즘은 로봇 개도 같이 봐 주는 동물병원이 많으니까 상관 없을거야.”

 

유리는 어미 개를 차 뒷좌석에 실었다. 낑낑거리며 몸을 벗어날 힘도 없는 불쌍한 강아지 둘은 블리스가 안았다. 말하지 않아도 결정되었다. 이제부터 블리스와 유리는 이 강아지를 키울 것이다.

 

이름, 이름은 뭐라고 할까요?”

네가 찾은 강아지잖아. 너한테 맡길게, 블리스.”

 

유리가 거칠게 차를 운전하며―비켜! 강아지가 아프다고!― 강아지를 흘끔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강아지는 흰 바탕에 검은 털이 난 점박이였고(아마도 하운드 종류로 보였다), 로봇 강아지는 길고 검은 털이 난, 부숭부숭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마도 메모리를 다른 몸에 옮겨 가며 성장하거나 평생 강아지로 귀여움을 받을 수 있도록 탄생한 로봇일 터였다.

한편 유리의 말에 블리스는 가만히 생각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문득 그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이름 두 개가 있었다.

 

그럼 베로스우로 해요.”

베로, 스우?

 

이상한 이름이지만 유리는 거부하지 않았다. 어쩐지 듣고 보니 그도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케르를 키울 때부터 생각해오던 것이 유전자에 남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베로랑 스우.”

 

형제처럼 지내게 될 두 강아지가 춥지 않게 꼭 끌어안으며, 블리스는 미소지었다. 낑낑대던 강아지는 열기를 내는 블리스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색색거리며 잠들고 있었다. 바라보는 블리스의 입가에는 어느덧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