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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외전 1

     

 


 

1229번째가 수많은 칼날에 의해 분해되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도 실패다.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직접 클론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었다. 몸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유리 살티코프가 뇌만 남아 살아온 것도 벌써 오십 년째, 클론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십 년이 더 되어 간다. 뇌만 남아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수행하는 수도승― 아니, 이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수도승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 유리 살티코프는 참회자에 가깝다. 그는 어떤 곳에도 기소당하지 않았지만 범죄자다.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미래의 단 한순간을 위해서, 그는 오직 자신의 클론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에게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뇌만 남아 있는 상태를 살아있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생명 경시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유리 살티코프가 하고 있는 다른 방식의 생명 경시는(정확히는 그의 목숨만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기 자신의 클론을 없애는 것이었다.

블리스가 죽은 뒤로 오십 년, 그리고 그 뒤로 뇌만 남아 오십 년. 백 년을 버틴 보람이 있는지 유리 살티코프는 작금의 기술력으로 클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계속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던 블리스의 단 하나뿐인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도 듣게 된 것이다. 구형 안드로이드지만 블리스의 기억을 온전히 보존한 것은 이 세상에서 그 로봇이 유일무이했다.

블리스 플레쳐의 죽음은 온전히 유리 살티코프의 업業이었다. 레드 마피아의 히트맨으로 일하던 기간에 유리는 적들을 많이도 만들어 놨었다. 그 모든 것들을 그저 죽이면 된다고 생각하던 젊은 유리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자기 대신에 총탄에 꿰뚫려,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창백해져 가는 블리스를 바라보는 것은…… 참담한 일이었다. 사실상 블리스의 죽음은 유리에게도 사형 선고였다. 유리 살티코프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일은 블리스의 죽음이었다. 그에게 복수를 원했던 사람이라면 가장 최적의 복수를 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유리 또한 복수를 원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유리는 죽지 않았다. 죽지 못했다. 블리스와 관련된 자들은 전부 죽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목숨을 내버린 한 마리 외로운 표범처럼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는 복수를 이루지도 못하고 다시 총탄에 꿰뚫려 죽고 말리라. 비참하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블리스의 옆에서 죽지 못하는 것은 두려웠다. 그는 죽을 거면 블리스의 옆에서 죽기를 원했다. 블리스의 옆에서 묻혀야 했다. 어떤 고통도 고문도 두렵지 않았지만, 블리스가 없는 세상은 매우 두려웠다. 블리스는 죽었다. 그래서 겁이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유리 살티코프는 러시아의 뒷세계를 지배했다. 레드 마피아들은 거의 유리의 손에 떨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레드 마피아들을 제 손아귀에 넣었고 자신의 죽음을 사주한 이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정확히는, 그들의 어떤 혈육도 남기지 않고 전부 지옥으로 이끌었다. 한 살배기 어린아이도 핏물 속에 묻었으니 유리 살티코프 또한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곳에 블리스는 없겠지……. 하지만 유리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십 년을 블리스의 복수와 레드 마피아를 유지하는 데에 썼다. 온 세계가 인정할 정도의 세력이 되고 나서야 유리는 지쳤다. 몸은 노쇠했고 그는 블리스의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 블리스의 옆에 묻힐 준비를 전부 끝냈는데 하필 유리 살티코프는 블리스 플레쳐의 구형 안드로이드에 대한 소문을 들어 버렸다. 지금까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던 그 안드로이드 말이다.

사실, 블리스를 흉내 낸 안드로이드들은 많이 있었다. 블리스의 기억과 연주를 대충 보고 알고리즘이 입력된 안드로이드들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고 유리는 자신의 집으로 들였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개 기계적인 반응만 보였다. 조금 실제적인 블리스 플레쳐는 그를 보고 도망가거나 겁을 먹었다. 실망투성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연주가 진짜 같았던 것도 아니다. 라이센스가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블리스를 모욕하는 수준의 연주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오롯이 아름다운 천재 음악가라는 상품성을 위해 만들어진, 싸구려 오나홀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도 있었다. 그런 추악한 것은 유리가 직접 전원을 끄고, 불에 태워 버렸다.

유리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블리스도 있었다. 유족들의 기억으로 재현해 낸다던가. 그 블리스는 우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리.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비로소 유리는 그것이 자신의 기억에서 파생된 존재임을 깨달았다. 블리스는 저런 말을 하지 않을 텐데, 유리 자신의 욕심으로, 유리 자신의 불안으로, 만들어진 블리스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유리는 블리스를 만들어낸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안드로이드를 마주했을 때 일말의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내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정말 블리스를 다시 만난다면,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가짜에 불과한 안드로이드를 앞에 두고 유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끄고 다시 캡슐 코쿤 안으로 넣어 버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오십 년간 이런 갖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기에 유리 살티코프는 죽기 직전에야 그 안드로이드의 소식을 들은 것이 기뻤다. 동시에 아쉬웠다. 아무리 인조인간 개조를 거쳤다지만 그의 몸이 가진 생명은 거의 끝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은 미리 블리스 플레쳐의 육신 근처에 묻어 놓고, 뇌만 꺼내 놓았다. 뇌만 남아 그 구형 안드로이드를 찾기 위해서였다. 자기 자신과 만나지 않은 블리스 플레쳐의 기억이 담긴, 순수한 블리스를 만나기 위해. 만약 그 안드로이드조차 모든 내용을 듣고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옥으로 갈 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노쇠한 육체 대신 움직여 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침 클론 산업이 시작되었고 유리는 남은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 유리가 레드 마피아를 일구며 쌓은 부는 그를 노리지 않게 전부 분배하고서라도 조 단위로 남아 있었다.

그의 투자가 성공적이었는지 클론 산업은 꽤 성공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었고, 유리는 초기 투자자로서 끊임없이 클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클론특별법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클론을 한 개 이상 만들 수 없어 매번 없애야 했지만, 유리에게 자신을 죽이는 것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속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두려운 것도 없었다. 그는 갈기갈기 찢기는 육체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어떠한 영혼도 인지도 담기지 않은 잠자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그 클론들을 보면서 말이다.

유리가 클론들을 죽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클론이 다 만들어지고 난 뒤, 유리는 그 DNA를 조금 채취해 직접 만든 시뮬레이션 안에 넣어 보았다. 시뮬레이션은 유리의 기억에서 추출된 블리스의 AI가 있었다. 온갖 수정을 거친 끝에 시뮬레이션 속의 블리스는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유리는 만들어진 클론이 블리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원했다. 배은망덕한 클론이 블리스를 구하겠답시고 그를 죽이면 모든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그 자신(클론)이 다시 한번 더 블리스와 사랑에 빠진다면, 간신히 구한, 그 귀한 존재인 블리스 플레쳐의 안드로이드마저 유리의 클론 대신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는 속죄해야 했다. 그의 클론조차도 블리스를 사랑해서는 안 됐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질투였다. 내 블리스는 이미 죽었는데 네가 감히. 내 조악한 카피인 너 따위가.

하지만 만들어진 클론들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족족 블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안드로이드일지라도. 어떤 시련이 있을지라도. 원본인 그가 방해하면 할수록 사랑은 깊어졌다. 이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99.9%의 확률로 완벽하게 인간형 생명체의 감정을 예지했다. 그렇기에 유리는 화가 났다. 유리 살티코프는 천 번이나 다시 태어나도 블리스 플레쳐와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였다.

1230번 또한 블리스와 사랑에 빠져 원본인 자신에게 폭탄 테러를 하고 자멸하는 선택지를 골랐다. 유리는 다시 1230번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시뮬레이션에는 며칠이 걸렸다. 1230번이나 블리스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기록들을 볼 때마다 유리는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1231번째 클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조금 다를까. 어쩌면 안드로이드 블리스를 구하러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천 번, 이천 번― 자기 자신의 클론이 블리스에게 사랑에 빠지는 결과만 바라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천천히 느릿느릿 출력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1231번은 블리스 플레쳐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블리스에게 매정하게 대하기까지 했다.

마지막까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유리 살티코프는 결정했다. 이 녀석으로 하기로. 지금까지 몇몇 클론으로 블리스의 집을 청소한다거나 남은 일처리를 하긴 했지만 그 클론들도 결국은 삭제했다.

1231은 다른 결과물을 냈다. 그러므로 이 몸으로 할 것이다. 블리스를 찾고, 구하고,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그 모든 일을 이 몸을 걸쳐서.

클론 또한 뇌가 있으므로 인지능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유리 살티코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만했다. 원본이니까. 뇌 안에 칩이 심어졌으니, 1231은 어차피 반항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를 죽이려는 클론들이 많았으므로 유리는 안전장치를 꽤 많이 추가했다)


유리관 속에서 처음으로 갈기갈기 찢기지 않고, 인지능력을 가진 채로――클론, 유리-1231은 눈을 떴다.

차마 생각을 하기도 전에 칼날에 갈기갈기 찢겨진 클론들의 부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재활용의 재활용을 끝없이 반복한 끝에 만들어질 때 무언가 DNA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미세한 돌연변이 유전자가 블리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만들어냈을 수 있었다. 아니면 천 이백 번이나 죽은 유리의 클론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속였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천 이백 번이나 죽는 유리를 바라보는 것이 슬펐던 시뮬레이션 속의 블리스 플레쳐가 온 힘을 다해서 결과물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오류였거나, 세상의 변덕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시뮬레이션 결과는 어긋났다.

유리-1231AMS-BLESS_FLETCHER_01에게 절절하게 사랑에 빠져 버렸으므로.

 

 

결국 너 또한.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예외는 없었다.

어떤 유리도 블리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