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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Chapter 02. 이름 짓기 03

그렇게 지금으로 돌아온다.

새벽녘, 블리스는 잠도 자지 않고 검은 신수의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쌀쌀한 밤공기가 불어와서 아슈레를 불러서 따뜻한 차는 없는지 물어봤다.

한밤중에도 아슈레는 자고 있지 않았다.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집이었다면 어쩌면 잔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슈레는 잔소리는 하지 않고 묵묵히 찬장을 뒤져 코코아 가루를 찾아 주었다. 코코아! 그리고 마쉬멜로우.

“저는 서대륙과 동대륙에 모두 살아봤습니다… 하지만 고향은 서대륙의, 그래요, 브리타니아네요. 그래서 블리스 님에게 제가 배정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슈레는 블리스의 동향인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조금 블리스를 안정시켰다. 현수와 의현은 같은 나라 출신이어서 종종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동대륙어로 이야기하면 블리스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같은 나라 출신의 친구가 있는 셈이었다!

“와! 처음 알았어요.”

“네. 그러니 힘든 일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뭐든 도와 드릴 테니까요.” 

아슈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따뜻한 코코아와 마쉬멜로우는 새벽녘까지 깨어 있을 적, 블리스가 즐겨 마시는 음료였다. 보드카 같은 것을 부어 마신다고도 하지만 블리스는 아직은 달콤한 맛을 즐기고 싶었다. 폭신폭신한 마시멜로도 좋았고. 특히, 한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블리스는 코코아를 마시며 산타를 기다리곤 했다. 

코코아를 한 잔 타서 돌아가는데 쫄쫄거리며 쫓아온 신수도 코코아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슈레와 대화할 때는 블리스 근처를 얼쩡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는데 어쩌면 경계심이 심한 걸지도 몰랐다. 

“갸욱!”

그거 뭐냐는 듯이 컵을 내려놓으라고 성화였다. 

“이 컵… 이 궁금한 거예요? 알았어요, 내려놓을 테니까… 마시면 안 돼요!”

강아지랑 고양이는 코코아를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블리스는 알고 있었다. 코코아를 마실 적에 형들이며 메이드들이 단단히 주의 주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수니까 마셔도 괜찮을까? 하지만 일단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냄새만 맡는 거예요. 궁금한 것 같으니까.” 

“…….”

블리스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신수가 가만히 컵 안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마쉬멜로우가 동동 떠다니는 걸 보는 신수의 머리가 갸웃, 갸웃 거리고 있었다. 

킁킁.

신수가 냄새를 맡더니 블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이런 걸 먹는다고?’ 싶은 표정인 건, 착각일까? 블리스도 다른 신부들처럼 신수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신수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마쉬멜로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앞발을 이용해 마쉬멜로우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통통한 앞발이 머그잔 안에 다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갸옹! 하고 운 신수가 발을 꺼냈을 때, 발톱에 마쉬멜로우가 박혀 있었다!

“어! 아, 안 돼…!”

함냐.

블리스가 막기도 전에, 신수가 앞발을 제 입에 덥썩 물었다. 코코아가 묻은 마시멜로가 입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블리스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마시멜로를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블리스가 신수의 주둥이를 잡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신수는 마시멜로와 거기에 묻은 코코아를 이미 맛보아버린 것이었다!

“안 돼, 뱉으세요! …아직 어린데 벌써 이렇게 단 걸 먹으면 안 된다고요! 그리고 고, 고양이는 코코아 마시면 안 돼요!”

“우웅, 우우우웅!! 갸웅!”

신수가 싫다고 버둥거렸다. (어쩌면 이 몸은 고양이 따위가 아냐! 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몸에서 바둥거리는 힘이 상당했다. 버둥거리던 신수가 몸을 아래로 훅 내려가며 블리스의 품에서 도망갔다.

“갸옹!!”

뭐랄까, 뭐 하는 거야! 내지는 내놔! 로 들리는 건 블리스의 착각일까. 마시멜로를 한 번 먹더니 눈빛이 완전 야수의 눈빛이었다. 신수의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신수가 코코아로 몸통 박치기를 하듯이 뛰어 달려들었다! 블리스가 허무하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신수는 코코아에 주둥이를 박고 허겁지겁 마시고 있었다!

“안돼!!”

당장 아슈레에게 찾아가서 토해낼 수 있는 것이 없는지 물어봐야 해…! 블리스가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아웅웅웅…. 왕왕웅웅….”

신수는 웅얼대는 소리를 내며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귀가 팔락거리며 조금씩 움직이고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누가 봐도 맛있는 걸 먹는 동물이었다. 어디 아픈 걸까… 라는 생각은 찰나 사라졌다. 블리스가 황급히 컵을 뺏어 들자 신수는 순순히 물러났다. 입맛을 다시며 물러난 신수가 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다 마셨잖아!”

블리스가 허망하게 컵 안쪽을 바라보았다. 컵 안쪽이 깔끔하게 깨끗해져 있었다. 혀로 거의 설거지를 한 것 같았다! 

“갸웅! 갸아아악!”

이 와중에 신수는 블리스의 다리에 매달려서 냥냥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이 맛있는 걸 더 내놔!” …일지도 모른다. (발톱을 숨겨서 아프진 않았다) 갑자기 울음소리를 멈춘 신수가 귀를 대각선으로 세우고 집중해서 블리스의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표는 물론 블리스의 손에 들린 컵일 것이었다!

“안 돼…!”

한밤중에 블리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이름은… 코코아라고 정해진 겁니까?”

현수가 말했다. 

블리스는 한숨 쉬며 유리의 머리를 복복 쓰다듬었다.

“네에….” 

“와웅와웅웅웅”

부드러운 목화솜이 들어간 인형은 스키피가 어디선가 꺼내온 것이었다. 지금은 코코아의 물어뜯기 장난감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기분 좋은지 인형을 물고 머리를 흔들기도 하며 검은 신수, 아니 코코아는 인형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끔은 뒷발을 뻥뻥 날려대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 초췌해 보인다 싶었는데, 그래서인가.’ 

블리스는 잠을 자느라 아침 식사도 걸렀다는데 아마도 밤새 신수에게 코코아를 해다 바친 것 같았다. 

“계속 코코아를 주다가, 저도… 모르게 그냥 욱! 해서. 무,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요. 아무튼 그럼 지금부터 이름을 코코아라고 해버릴 거예요! 라고 했는데 왠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하얗고 쫀쫀했으면 마시멜로라고 이름 붙였을 텐데. 블리스가 인형을 물어뜯는 코코아의 머리를 세게 쓰다듬었다. 눈 흰자가 보일 정도로 이마를 쓰다듬었는데도 인형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헉, 귀여운 이름이네요, 헉.”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복덩이를 잡아채서 온 의현이 말했다. 오늘 아침, 블리스는 아직 쿨쿨 자고 있을 때, 복덩이가 자는 의현의 품을 벗어나 식량 창고를 습격하고 못에 빠져 물장난을 쳤다고 한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라고 현수는 생각했다.

뒤늦게 의현은 복덩이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고, 점심이 막 지난 지금까지 복덩이를 빡빡 씻기고 온 것이었다. 물은 좋아했지만 씻는 것은 싫었던지 복덩이의 갸욱갸욱 비명이 욕실에서 들려왔었다. 

현수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복덩이는 씻겨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통 안에서 놀고 싶은데 왜 자꾸 자기를 잡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들이붓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둥거리며 벗어나려고 하고, 의현의 몸에 달라붙고, 도망 다니고! 처음에는 조곤조곤 가만히 있어야지~ 라고 하던 의현도 마지막에 가서는 “가만히 있어!” 하면서 말렸던 것이었다. 

의현은 목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았다. 복덩이는 물기는 좀 있었지만 보송보송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현은 영락없는 물에 빠진 쥐 꼴이었다. 의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 꼴이 말이 아니죠? 어쨌든 축하해요. 이름을 정했다니까.”

의현이 자기가 안고 있는 복덩이를 (어쩐지 조금 불만이 있어 보였다) 코코아의 눈높이로 올렸다.

“갸-웅.”

호랑이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의현을 바라보고 있던 복덩이의 눈이 코코아가 들고 있는 인형에게 쏠렸다. 

“갸웅!!”

그리고 의현의 품에서 발버둥 쳤다. “갸웅! 갹!” 앞다리와 뒷다리를 모두 뻗어가며 어떻게든 코코아가 물어뜯고 있는 인형을 물고 싶어 안달이었다.

“어허. 복덩이. 가만히 있어. 왜 그러지?”

현수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현수의 작고 아름다운 신수, 운은 꼴이 재밌다는 듯이 현수의 머리 위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수와 운은 그러니까 관찰자 입장일지도 모른다. 

“갸욱!”

의현의 품에서 버둥거리던 복덩이가 장시간의 목욕으로 힘이 빠진 의현의 손에서 탈출했다. 

그리고는 코코아가 물고 있는 인형으로 돌진해, 끄트머리를 잡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앗!”

“어라…?!”

블리스랑 의현이 동시에 단말마를 내뱉었다. 신부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고양잇과 신수들은 인형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자신이 잘 물어뜯고 가지고 놀고 있던, 자신의 소유물을 뺏기게 된 코코아는 처음에는 당황한 듯 했다. 턱에 힘이 풀린 것인지 복덩이 쪽으로 인형이 쭉 늘어났다.

“그르르르르릉….”

심히 화가 난 것 같은 모습으로 코코아가 뒤늦게 인형을 잡아챘지만, 너무 늦었다. 코코아의 꼬리가 땅바닥을 팍팍 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만이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천진난만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복덩이가 이미 인형을 제 것처럼 팍팍 뒷발차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런… 미안해요. 복덩아, 놔야지? 복덩아, 이거 네 것이 아니라….”

의현이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호랑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목덜미를 들어 올려도 인형을 입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고, 코코아는 분통이 터지는지 결국 “갸우웅!” 하고 인형을 잡고 놓지 않았다.

“돌아가서 형이 다른 인형 줄게! 착하지? 이거 친구 인형이잖아… 코코아, 코코아 인형이래 복덩아!!”

의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복덩이는 싫은지 눈을 깜빡이면서 “갹! 갹! (싫어! 복덩이 이거 가지고 놀래!)” 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갸우웅! (맞아, 내 인형이야 이 새끼야!)”

코코아가 화를 내며 인형을 물고 있는 것을 놨다. 그리고는… 

복덩이에게 달려들었다!

“헉, 안 돼!” 

블리스가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코코아는 화가 난 나머지 복덩이에게 달려들었고 그 순간 의현이 목덜미를 놓치는 바람에, 두 신수는 바닥에서 엉겨 붙어 난장판이 되도록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현수에게는 그저 두 동물 인형이 귀엽게 구르는 것마냥 귀엽게 느껴졌다. 원래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형제는 저렇게 몸싸움하며 놀지 않는가. 그렇게 친해지는 것이고…. 어쩌면 운도 지금 저기에 껴서 몸싸움해야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둘 다 귀족 출신이라 과보호가 지나친 것 같네.’ 현수는 그렇게 일갈했다. 

“그만 싸워~.”

“친구한테 상처 입히면 안 돼! 복덩이 너 자꾸 그러면 이름 말썽꾸러기로 바꾼다!?”

현수와 운이 어떻게 생각하나 말거나, 의현과 블리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제 신수들을 중재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