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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Chapter 1. 탄생 07

어쩄든 나쁘지 않은 첫 만남이었다. 생각했던 괴물 같은 게 튀어나오지 않았으니까. 까만 먼짓덩어리 같은 신수는 꽤 활력이 넘쳤다. 블리스가 쓰다듬는 손을 멈추면 신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블리스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블리스는 계속 신수를 쓰다듬고 있어야 했다. 

블리스는 유리의 탄생을 신전에 알렸다. 신수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알을 반숙 삶은 달걀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스키피 또한 기뻐했다. 

“마침내 명계의 신수님도 태어나셨습니다. 주신께 감사드립니다.”

인자로운 표정을 한 교황이 말했다. 안정적인 자세로 호랑이 신수를 안아 든 의현과, 목에 용을 감고 있는 현수도 어느새 자리에 있었다. 같은 저택에 살고 있으니 구경할 겸 쪼르르 온 것이다. 

“검은색 호랑이…? 같은 건가?” 

의현이 말했다. 확실히, 명계의 신수는 그가 안고 있는 호랑이 신수와 비슷한 실루엣이긴 했다. 

“생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고양잇과는 맞는 것 같은데요.”

현수가 신중하게 명계의 신수를 살펴보았다. 블리스의 쓰다듬을 받고 있던 명계의 신수는, 현수를 경계했다.

“갸옹!”

“오호, 꽤 성깔도 있으신 모양이네.”

의현이 웃으며 말했다.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그 말에 신수가 또 울 것 같아 보이자, 블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신수를 안아 들었다. …의현과 같은 모양새로.

“갸! 옹!”

“먀아아악!”

까만 먼짓덩어리 같은 신수가 블리스의 품에서 살짝 버둥거렸다. 울음소리에 의현의 품에 있던 신수도 울음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블리스는 어색하게 그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그러니까 조카를 이렇게 안아 들었던 것 같은데….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블리스의 큰 형은, 이미 아들이 있었다. 어린 조카를 블리스도 안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블리스는 의현만큼 자연스럽게 안아들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신수는 블리스의 품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아무래도 신수님을 다들 잘 돌봐주고 계신 모양이니, 제가 돌보는 법 같은 걸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예? 저희가… 완전히 돌봐야 하는 겁니까?”

현수가 당황해서 물었다. 블리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교황을 쳐다봤다. 어쩐지 현수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현수의 기대에도 무색하게,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전에도 말했지요. 신부님들이 근처에 있어야 신수님들이 안정을 취한답니다.”

“알이 깨어날 때까지만이 아니었던 게…?”

“삐!”

현수의 다급한 질문에 어쩐지 불만스러운 말투로 용이 삐약삐약 울었다. 

“아, 아니야.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다급하게 현수가 어린 용을 진정시켰다. 자기 목을 감싼 털목도리 같은 걸 쓰다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삐약!”

“하하하. 그렇습니다. 신수와 신부는 일심동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신수님이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았을 때, 다른 인간들의 손길이 닿으면, 신수님들의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네?”

블리스가 제일 먼저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말했다기보다, 당혹스러움에 감탄사 비스무리한 것이 튀어나왔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질문으로 받아들였는지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했다. 

“만약 신전에서 다 같이 키우는 것이 좋았다면 이런 저택도 따로 만들어 두지 않았겠지요? 흠…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으려나…. 그래, 갓 태어난 신수님들은 하나의 기운으로 뭉쳐진 덩어리입니다.” 

교황이 양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무언가가 뭉쳐있는 구 모양을 흉내 냈다. 

“각자의 기운으로 뭉쳐져 있지요. 그런데, 인간 또한 각자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기운을요. 물론 인간은 기운이 뭉쳐진 존재는 아닙니다. 몸에 미세하게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에 가깝지요. 하지만 신수님들은 순수한 기운 덩어리입니다. ”

그러고 보니… 사람마다 마나의 기운이 다르다는 사실을 블리스는 알고 있었다. 의현이나 현수 또한 ‘기氣’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이 설명을 계속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신수님들은, 우리 눈에 보일 수 있게, 우리가 만질 수 있게, 우리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이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 겁니다. 우리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라면 이곳에서 허용되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니까요. 그런데, 신수님들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갓 태어난 생명체는 연약하죠. 신들의 세상 상계上界를 두고 하계下界에서 다시 태어나신 셈이니, 기운을 뭉치는 힘도 약하고, 아직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기 어렵습니다.”

“삐약.”

용이 울었다. 뭔가… 맞다고 맞장구치는 것 같았다. 블리스는 제 품에 안긴 명계의 신수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두 고양이 신수들은 교황의 말에도 품에 안겨있을 뿐이었다. 털이 돋아난 보송보송하고 동그란 정수리는 금방이라도 쓰다듬고 싶게 깜찍하다. 그리고 누가 말 할 때마다 쫑긋거리는 귀는 또 어떤가. 자그마한 귀도 사랑스럽다. 

“더군다나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인간의 조그마한 기운에도 쉽게 영향을 받고 말죠. 뭉쳐져 있는 기운이 흩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들은 다릅니다. 신부님들은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신수님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옆에 있는 것만으로 신수님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기운을 뭉치는 힘에도 도움을 주고, 더 강한 신수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보필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신부’ 그 자체죠? 그렇기 때문에 신부로 뽑히는 것입니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의현이 호랑이를 둥가둥가 안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낯으로 덧붙였다.

“정말, 왕 옆에서 왕을 보필하는 짝,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왕비에 대한 설명과 똑같네요. 동대륙의 철학에서 아내들이란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적혀 있으니까요.”

내가 조강지처가 될 줄은 몰랐지만. 의현이 말을 삼켰다. 

“신께서 안배하신 아주 운명적인 일이죠. 동대륙의 왕비도 왕실 웃어른들이 탄생일시를 점쳐 왕과 가장 어울리는 이를 뽑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이니까요. 하물며 나라의 왕비님도 이리 중요한 일인데, 세상 만물의 이치와 기운을 관장하는 신수님들은 어떻겠습니까.”

“삐.”

용이 다시 한번 맞는 말이라는 듯이 삐약 하고 울었다. 현수가 용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어쩌면 칭찬의 의미처럼 보였다. 

교황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떨 때는 신부님이 없으면 어떡하나, 우리 신관들도 아주 걱정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답니다. 어떤 신부님은 신수님보다 40년이나 일찍 태어나셨죠. 하지만 신수님과 딱 맞는 기운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신께서 안배하신 것이라 말하는 겁니다.” 

블리스가 제 품에 안긴 신수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기운을 느낄 정도로 예민하지 않아서일까? 교황이 하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동화 속 이야기나 신화 같았다. 

한편 현수는 신부가 확정되고 그들을 죽이려는 세력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세계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이 있을 것 아닌가. 돌이켜 보면, 현수 또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안전하게 이곳으로 도착했다. 설마 비밀 수호자들이라도 있어, 그들을 보호했던 것일까? 현수는 나중에 교황에게 슬쩍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설명을 다 들은 의현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호랑이 신수를 땅에 내려놨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최대한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으면서 신수 님을 키우면 되는 거죠. 신수 님이… 다른 기운에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손만 안 탈 뿐이지 다른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 신관들이 성심성의껏 도울 겁니다 .”

호랑이 신수는 짧뚱한 네 다리로 서 있다가, 뚱땅뚱땅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쪽을 무심코 바라본 블리스가 풋 하고 웃을 정도로.

“먀악!”

“아이고, 우리 꼬물이 때문에 정신이 없네.”

호랑이 신수가 우렁차게 우는 바람에, 모두의 집중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어차피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상태였다. 블리스는 더 궁금한 것이 없었다. (원래도 그는 무언가에 수긍하고 순종하는 것이 편한 타입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교황보다, 의현에게 궁금증이 일었다. 

“꼬물이요?”

내심 속으로 ‘…꼬물이?’ 하고 생각하고 있던 현수도 의현을 쳐다봤다. 의현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씩 지었다. 그리 웃으니 아름다운 얼굴이 조금 쾌활한 사내 같았다. 

“이름을 계속 신수님, 신수님 할 수는 없으니까요. 품에서 꼬물, 꼬물대는 게 귀여워서 그만 무심코. 실례였을까요?”

당당한 태도의 의현이 교황을 쳐다보았다.

‘꼬물이…. 그것보단 뚱땅이 같은데….’

현수가 생각했다. 하지만 배만 볼록 나오고 다리가 짧은 대형 맹수 종 고양잇과 새끼는 다 저렇게 걸을지도 모른다. 

“흠… 그렇군요, 이름이라. 이름은 신부님이 지어 주시면 됩니다.”

“예?”

“부르시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됩니다.”

“그, 그래도 되는 거예요…? 진짜 이름 같은 거 없나요?”

블리스가 물었다. 현수도, “진명… 진명이라거나.” 하고 말을 더듬었다. 

“용님의 이름 같은 중요한 것을… 제가 지어야 한다니요.” 

현수는 곤란해 보였다. 이제 그의 목을 휘감고 있는 용은 곤란해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진명은 신수님이 다 성장한 후에야 받을 겁니다. 그전까지는 여러분이 마음껏 마음대로 불러 주세요. 그리하시는 편이 신수님들도 오히려 마음이 편할 테니까요. 더 친해지기도 쉬울 거고요. 무엇이 되었든, 신수님들은 좋아하실 겁니다. ” 

교황이 말을 마치고 허허 웃으며 모든 질문을 차단했다. 그리고 잘 부탁한다며 신관들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 아슈레와, 보필하는 신관 몇 명만이 저택에 남아 점심밥을 만든다고 했다.

블리스와 현수는 침울한 표정으로 제 신수를 바라보았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니…. 너무 거창한 일이다. 현수는 이름 짓는 데에 재주가 없었고 블리스는 부드러운 털결의 토끼의 이름을 짓는 것이나 잘 했지, 검은 맹수의 이름은 도통 어떻게 지을 줄 몰랐다. 

“그럼, 우리 꼬물이~ 이름을 지어줘야겠네~.”

현수와 블리스의 심정도 모르고, 의현은 자리에 앉으며 호랑이 신수를 쓰다듬었다. 눈을 뜬 호랑이의 눈동자는 파란색과 라임색이 섞인 듯한 파이아이였다. 

“먀악! 먁!!”

쉰 듯한 목소리로 호랑이 새끼가 운다. 다시 봐도 분홍색 털 결이 마치 봉숭아꽃에 물든 듯, 벚꽃을 붙인 듯 어여쁘다. 복숭아 같기도 하고. 의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름 몇 개를 추렸다. 그러더니 “아!”하고 손바닥을 짝 쳤다.

“이름… 을 정하셨습니까, 벌써?”

현수가 물었다. 의현이 싱글싱글 웃었다.

“정했어요~! 아주 어울리는 것으로. 꼬물이보다 낫네요.”

그러더니 제 신수를 불렀다.

“복덩아~.”

현수의 고개가 기우뚱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멍하니 현수는 의현을 바라보았다.

 ‘아니… 고민의 시간이 짧았어도 그렇지, 복, 복덩이? 신수 이름이 복덩이? 무슨 손주 부르는 할머니도 아니고…. 그보다 호, 랑이한테 저런 이름이 가당키나 한가?’

“데굴데굴 굴러온 복이 가득 담긴 복숭아 같으니까 네 이름은 복덩이야, 알았지?”

블리스도 입을 살짝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실로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 

두 신부가 당황한 것도 모른 채, 복덩이라는 이름이 붙은 호랑이 새끼는 저를 부르는 신부에 기쁜 듯이 먁먁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