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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Chapter 1. 탄생 06

알은 덩그러니, 바구니 안에 담겨,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침대 옆 협탁 위 얌전하게 올려진 채로. 여전히 미동이라고는 없었다. 당연히,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운 겉껍데기에 금이 가는 일도 없었다. 

(만약 조류 전문가 앨런 유니우스가 있었다면, 얇은 껍데기의 알에는 불빛을 비춰 언제 태어날지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알은 껍데기가 두꺼워 불빛을 비춰 확인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침대 위에 엎드려 블리스는 한참 알을 바라보았다. 블리스의 눈치를 보던 스키피도 1층의 제 방으로 떠난 지 오래다. (원래 신관들은 신관 숙소의 한 부분을 주고 싶어 했지만, 스키피와 같이 충실한 하인들은 그냥 이 저택의 남는 방들을 하나씩 가졌다) 블리스는 스키피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블리스 님! 왜 이렇게 시무룩하세요? 들었어요. 다른 신수 님들이 다 깨어나셨다면서요. 블리스 님의 신수는요? …앗, 아. 아직 알에서 안 나오신 건가요? 음. 신수님이 우리 블리스 도련님처럼 조금 늦잠을 주무시고 계신 거 아닐까요? 그리고 알껍데기도 두꺼우니까요. 이거 근데 진짜 알이에요? 와, 세상에 이렇게 생긴 알은 처음 보네. 앗, 함부로 만지지는 않을게요. 이거 만지면 찔려서 아플 것 같아요! 블리스 님도 만질 때 조심해서 만지세요. 안 건드리셨다고요? 예? 에이, 블리스 님이 품고 있지 않았다고 해서 안 깨어나시는 건 아닐 거에요. 다른 신수님들도 그럼 닭처럼 품고 있었어요? 그건 아니고 안고 있었다고요? 흠, 블리스님이 안고 계시려면 이불 같은 것에 싸서 안아야 하겠는데요. 어어, 조심하세요. 블리스 님의 여린 살결에 상처라도 내면 어떡해요? 그럼 씻을 때 같이 들고 들어가셔서 씻는 건요? 음, 알을 물에 담가도 되려나? 네? 따뜻한 물에 익으면 어떡하냐고요? 그건 안 되죠! 신수 계란후라이는 무슨 맛이지… 앗! 블리스 님, 알이 방금 움직였어요! 네? 안 움직인 것 같다고요? 아니에요, 진짜 움직였다고요! 저만 본 거예요?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깨어나실 거예요. 근처에만 있으면 됐다고 했다면서요. 블리스 님을 담아 조용하고 차분한 알인가 보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저는 이만 가 볼 테니, 블리스 님도 너무 늦게 주무시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한 말이 조금 길긴 하지만….

아무튼 스키피의 조언을 떠올린 블리스는 일단 바구니 위에 두고 알을 관찰하고 있었다. 스키피 말이 맞았다. 신수 님의 알을 끌어안고 자다가 잘못 뒤척이면 찔릴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신수 님이 깨어나지 않은 걸까? 블리스가 알을 품어주지 않아서? 

“신수 님, 신수 님.”

블리스가 속닥거렸다.

“왜 안 깨어나시는 건가요?”

블리스가 조금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제가 꺼림직하게 생각해서요? 그래서 못 깨어나시는 거예요?”

그렇다. 내가 거부해서 알이 깨어나지 않는 거면 어떡하지. 블리스의 마음에 그런 죄책감이 생긴 것이다. 내가 무섭다고 생각해서, 내가 겁을 먹어서, 내가 의현처럼 끌어안지 않아서….

 그럼 난 신부가 못 되는 걸까?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줄까? 혹시라도 사악한 마음으로 신수님을 거부한 죄로 신전에서 평생 노동을 해야 하는 형벌에 처하기라도 하는 것 아닐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블리스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블리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더군다나 블리스는,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은 것으로 깨어나지 못하는 알이 불쌍했다. 만약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껍질도 다른 신수의 알보다 두껍고 뾰족해서 나오기도 힘들 것 같은데……. 정말 나 때문에? 내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 

“훌쩍.” 

블리스가 코를 훌쩍였다. 절대 운 것이 아니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미안해졌을 뿐이다. 

“미안해요, 신수 님.”

블리스가 천천히 일어나서 바구니 채로 알을 끌어안았다. 음… 이건 너무 정이 없나? 

“제가 잘못했어요, 사실은 신수 님이 무섭지 않아요… 내 신수 님인 거잖아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는걸요… 그러니까 빨리 알을 깨고 나와서 얼굴을 보여 주세요, 네?”

블리스가 알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닥거렸다. 그리고 알을 둘러싸고 있는 천째로 끌어안았다. 밤새워 알이 깨어나지 않을까 보고 있을 생각이었다. 끌어안고 있으면… 분명… 다른 신수들처럼 깨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했는데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신수님이 안 깨어나면… 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그럼 형들도 볼 수 있고 좋긴 한데….”

블리스가 말을 끝마친 순간, 알에서 두근! 하고 진동이 느껴졌다. 블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이 조금 움직인 것 같기도 하고…? 상체를 떼어내고 알을 바라보니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신수 님, 그거에요! 그렇게 계속 알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하시면 돼요!”

블리스가 파이팅, 파이팅하고 알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학교에 다닐 때 같은 기숙사 친구들의 풋볼 경기를 응원했던 것처럼. 작은 콧노래였던 것은 이내 자장가처럼 되었다. 알에 있는 신수님이 자장가를 듣고 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중에서야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착한 신수님, 우리 예쁜 신수님, 하늘도 해님도 달님도 별님도 모두 사랑하시고… ♬”

그렇게 살근살근 노래를 부르다 보니 블리스도 서서히 졸려 왔다. 조금 전에 또 따뜻한 물에 잔뜩 노곤하게 씻었던 것이다. 

“신수님… 도 잠들고… 별님도… 잠들고….”

블리스의 눈이 꾸벅꾸벅 감겼다. 몸도 서서히 기울어졌다. 마침내 블리스가 몸을 완전히 침대에 뉘이자, 천에 감싸져 있던 알도 조금씩 흔들… 흔들거렸다. 원체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드는 블리스였다. 알의 흔들림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새근새근… 알은 점점 격렬하게 흔들렸다. 

빠각!

알의 안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단단한 껍데기가 무자비하게 부서진다. 염원하던 부화이건만 블리스는 쿨쿨 자고만 있다. 깨어나지 않은 알이 그대로 커져서 블리스를 향해서 굴러오는 꿈이다. 알을 피하면 반대편에서 수백개의 작은 뾰족뾰족한 알들이 굴러오고, 검은 공간 속에서 허우적대고…. 

빠각, 빠각… 

알에서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온다. 아니, 자세히 보면 고양이가 아니다. 귀는 곰 같고, 몸의 무늬는 표범 같다. 표범 무늬는 자세히 보면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비치면 이따금 검붉은색으로 빛난다. 알에서는 검은 연기가 같이 새어 나온다. 명계의 신수라는 증거다. 

갓 세상에 태어난 이 신수 또한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 아직 작지만, 몸에 비해 두툼한 발바닥이 포근한 이불 여기저기에 발을 찍는다. 

“갸우웅…….”

으르렁대고 싶지만, 몸속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는 귀엽기 그지없다. 신수는 제 울음소리에 불만을 느낀 것처럼 울었다.

“갸로로로롱! 갸우우웅!!”

신수는 고개를 젖히고 한 번 울부짖었다. (울부짖음이 너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울음소리에 블리스가 잠깐 뒤척였지만, 여전히 새근새근 자는 도중이었다. 신수는 머리를 털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크기 자체는 갓 태어난 새끼 표범보다는 컸지만, 그래도 걷는 폼이 영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다. 뒤뚱거리며 몇 걸음 걸어간 신수의 도착지는 블리스의 품이었다. 

“갸웅….”

신부의 냄새, 이건 내 신부다. 그렇게 생각하며 신수는 블리스의 품으로 조금 더 붙었다.

(한편, 블리스는 꿈속에서 귀여운 새끼 곰과 같이 수프를 먹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신부와 얼마나 만나고 싶었던가. 그는 뺨을 조금 비비다가 신부 품에서 잠들었다. 

…갸옹!

“…으음… 스키피… 가 아니라… 으응…?”

블리스가 비몽사몽 한 와중에 눈을 떴다. 원래라면 일어날 일이 없는 시각이었지만, 한쪽 품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내가 인형이라도 끌어안고 잤나 싶은 촉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꿈에 새끼 곰이 나왔었지, 정말 귀엽고 보들보들했는데…. 내가 끌어안고 잤던가? 어렸을 적에 끌어안고 자던 인형을 두고 왔던 것 같은데……. 

그럼 이건 뭐지?

블리스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느릿느릿 깜빡이는데 시선에 검은 동글동글한 물체가 잡힌다. 동그랗고 털투성이의 검정색 무언가. 처음엔 이목구비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진짜 곰 같았다! 꿈에 나온 곰! 블리스 플레처가 또 예지몽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

“신수님?” 

블리스가 잠긴 목소리로 신수를 불렀다. 어젯밤 탄생하고,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신수가 말을 듣자마자 또 울었다.

“갸오오옹!”

먀악… 이 아니라 갸옹… 이라니, 이 얼마나 귀여운 울음소리인가. 아마도 “그래, 내가 신수야!” …라는 대답 같았다. 

‘그, 그렇다면, 시야에 잡히는 이 털 뭉치가 내 신수님? 내가 자는 동안 태어난 거야?’

블리스의 안색이 환해졌다.

몸을 살짝 일으키고 침대를 보니 확실히 뾰족뾰족한 알껍데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느라 태어나시는 걸 놓친 거야?’

갓 태어나서 귀엽게 삐악거린다거나 하는 그 중요한 장면을 놓쳤다고?

블리스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내심 어제 부화하는 것을 보며 블리스도 그런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블리스의 마음도 모르는 채, 신수가 다시 한번 울었다. 그리고 제 머리를 박치기하듯이 블리스의 가슴팍에 툭툭 쳤다. 

“갸웅. 갸웅.”

마치 일어나라는 것 같았다.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알만 보고 이상한 괴물이 태어나면 어떡하지 하고 두려워했던 과거가 후회될 정도였다. 이 털뭉치, 곰 인형 같은 생명체가 내 신수 님, 내 신랑, 이라니! 

“신수 님… 신수 님이시죠?”

블리스가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너무 귀엽다….”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마음의 소리가 그대로 내뱉어졌다. 신수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도 귀여웠다. 몇 시간 전 태어났을 때는 눈을 뜰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었기에 눈 색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수는 검은 털에, 붉은 눈 색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명계의 신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배색이었다. (눈 색이 피처럼 붉었지만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블리스 또한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수를 더 자세히 관찰하니, 뒤에 꼬리도 있었다. 통통하고 긴 꼬리에 블리스의 사고회로가 잠깐 정지되었다. 

“어… 곰… 이 아니셨나요?” 

신수가 제대로 된 어휘를 구사해서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혼잣말처럼 질문하게 되었다. 블리스의 말에 신수의 귀가 쫑긋거렸다. 귀가 동글동글하기에 곰인 줄 알았는데 또 자세히 보니 곰이랑 외관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건 뭐지…? 

(흑표범이라는 사실을 블리스가 알 리가 없었다) 고양이와의… 한 종류인가…? 부들부들한 털 결에 저절로 손이 간다. 블리스가 쓱쓱 머리와 등을 쓰다듬자, 신수는 반항 없이 받아들였다. 

마침내 신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