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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Chapter 1. 탄생 05

현수의 말대로 아름다운 진줏빛 알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격렬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주 작은 흔들림 정도이다.

이윽고 작은 알의 윗부분이 파각, 파각 소리를 내며 조금씩 깨졌다. 한 번에 우수수 깨지던 호랑이의 알과 달리, 이건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코… 콧잔등…? 머리… 인가?”

현수가 중얼거렸다. 블리스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조금 전 호랑이의 알과 달리 이 알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바다의 알에선 어떤 신수님이 태어날까? 동대륙 바다신수들은 Yong이라 하던데, 드래곤과는 다른 걸까?

“코… 위에 달린 뿔…? 로 알을 깨고 있어….”

현수가 일일이 중계해주지 않았다면, 블리스는 냉큼 제 알을 들고 현수 옆으로 갔을 것이다.

(이곳에 조류 전문가 앨런 유니우스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 부위는 파각치* 라고 설명해 줬을 것이다.)

*파각치 : Egg tooth. 난치卵齒 라고도 불리며, 알 속의 곤충이나 조류의 부리 끝에 붙어 있는 뾰족한 부분. 부화할 때, 안에서 알을 부수며 사용되고, 24시간 이내에 떨어져 나간다. 

“도롱뇽… 같군.”

현수가 혼잣말했다. 파각거리는 소리가 아주 작았다. 

의현 또한 그 자리에서 알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는 알이 깨지는 소란에도 의현의 품에서 작게 먀웅, 혹은 깍 하고 울 뿐이었다. 

알 윗부분의 구멍이 어느 정도 커졌다. 말랑하고 촉촉해 보이던 알이다 보니 우수수 깨지지 않았다. 구멍이 어느 정도 커지자, 그 안에서 꿈틀거리던 생명체가 단숨에 구멍으로 몸을 비집고… 

“튀어나왔어!”

…튀어나왔다. 현수가 감탄했다. 뱀이나 도룡뇽, 도마뱀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알은 완전히 깨지지 않았고 구멍으로 스르륵 튀어나온 신수가 바구니 바깥으로 제 몸을 드러냈다.

‘…뱀?’

블리스가 깜짝 놀랐다. 바다뱀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저런 형태이려나? 하지만 뱀이라고 하기도 묘한 생명체 같은데…. (블리스는 용을 몰랐다.) 

먼저, 머리는 파충류도 양서류도 아닌 사슴 같았다. 그러니까 포유류 같다는 말이었다. 왜냐면 귀가 있었으니까. 개나 고양이의 귀는 아니고, 둥그렇지도 않고, 따지자면 사막의 낙타나 소 같은 귀였다. 머리 위 콧잔등에는, 현수가 말한 것처럼 작은 뿔이 나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진줏빛이었다. 그리고 양 귀의 앞에도 작은 뿔이 돋아 있었는데 아직 커다랗지는 않았다.

진줏빛과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몸은 아주 길쭉했는데 동시에 크기가 작았다. 비늘이 반짝거려 몸통만 보면 파충류 같기도, 어류 같기도 했다. 하늘색 비늘로 이루어진 몸을 자세히 보면, 귀 아래부터, 등을 타고 털이 있었는데 하늘색 털이었다. 또 길쭉한 몸에 앞다리 두 개와 뒷다리 두 개가 있었다. 몸의 길이와 생김새를 비유하자면 담비나 족제비 같기도 했다. 그들도 몸통이 매우 길고 꼬리도 길었으니까. 그러나 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꼭 잡아 무엇을 닮았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크기는, 공만 한 크기던 새끼 호랑이 신수와는 다르게 매우 작았는데 블리스가 잘 아는 것들로 비유하자면, 작은 피리(리코더)만 했다. 절대 플루트만큼, 클라리넷만큼도 크지 않았다. 신수가 유연하게 구불구불 움직여서 조금 길어 보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신수는 몸을 조금 털기는 했으나 울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기도에 양수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켁, 켁

신수가 기침을 내뱉었다. 현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알껍데기를 떼 주던 의현의 태도와는 천지 차이였다. 기침을 내뱉고 몸에 달라붙은 액체를 몸을 한 번 흔들어 털어낸 신수가 눈을 떴다. 파충류의 눈이다. 연녹색 눈동자의 동공이 날카로웠다. 긴 속눈썹이 달린 눈이 깜빡이지도 않고 현수에게 고정된다. 

마치 현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은 듯.

“…용이잖아.”

현수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런 괴상한 동물을 동대륙에서는 용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용이 맞다는 듯 부들거리지도 않고 네 다리로 바구니에 똑바로 섰다. 그러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와!”

블리스가 깜짝 놀라 그곳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어차피 블리스의 알은 미동도 없던 것이다.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날지…?’

하지만 동대륙인들은 놀라지 않았다. 신수에 대해서 배운 적 있는 신관들도.

용은 하늘을 난다. 그것은 당연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스르륵 날개도 없이 허공으로 살짝 날아오른(혹은 둥둥 뜬) 용이 긴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현수를 빙빙 돌았다. 의현도 그곳에 시선을 빼앗긴 듯했다.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반짝거리는 비늘이며 긴 생김새와 큰 연녹색 파충류의 눈까지 정말 ‘신령스럽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현수를 느릿느릿 한 바퀴 돈 용이 현수의 눈앞으로 날아갔다. 

“신수 님…?”

현수가 파충류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물었다. 신수가 현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삐약.”

삐약?

블리스만 의아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의현의 표정도 꽤 이상했다. 현수도 당황한 듯했다.

“삐… 삐약, 이라고?”

“뺙. 삐약.”

용의 울음소리는… 조금 전 우렁찬 목이 쉰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와 다르게… 아주 작고… 가녀리고… 갓 태어난 병아리의 울음소리 같았다. 작은 새의 울음소리 같기도 헀다. 

“삐약. 삐.”

삐요 삐요 울던 용은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불만이 있는 게 맞았다.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는 현수의 가슴팍에 제 몸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것을 멈췄다. 

“어… 어… 신수 님?”

“삐.”

신수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신수가 말을 알아듣는 거군? 무슨 소린지 몰라도 알아듣는 것이 분명했다… 현수는 제 몸에 달라붙은 신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신수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현수가 의현을 바라봤다. 의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블리스를 바라봤다.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블리스도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수는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신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령스러운 존재의 탄생에 만족했다는 듯이. 현수만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입을 뻐끔거리던 현수가 마침내 작은 소리로 신관들에게 물었다… 

“어. 이제 어떡하죠….”

“그대로 잘 안고, 계속 챙기시면 됩니다. 저희도 도와 드리겠지만, 신수님들은 신부님이 돌봐주시는 것을 선호하시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아슈레가 대답했다. 현수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더니 팔을 둥글게 해서 용을 끌어안았다. 용이 만족한 것처럼 긴 꼬리를 흔들었다. 

“삐약.”

그런 울음소리를 한 번 내고 품속에 파고드는 용이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의 시선이 블리스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날아다니던 용을 보고 신기해하던 블리스가 다시 제 자리에 예의 바르게 앉았다. 눈을 내리깔고 언제 목을 쭉 뺐냐는 듯 얌전한 태도였다. 

블리스가 고개를 살짝 들어 주위를 훑었다. …신관들이 후드를 쓰고 있지만, 역시 블리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게 맞았다! 그리고 의현과 현수… 는 블리스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제 신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랑이는 먀욱먀욱 소리가 안 들리는 것으로 보아 자는 것이 맞는 것 같았고, 용은 가끔 눈을 깜빡였지만 역시 현수의 품에서 나오질 않았다. 현수는 건들지 못하고 있었지만 의현은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내 신수 님은 언제 태어나는 걸까?

블리스가 알을 바라보았다. 알은 미동도 없었다.

호랑이는 아주 크게 자랄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새끼 포유류여서 귀여웠고, 용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블리스는 파충류가 나오면 기겁했을 테지만, 적어도 저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라면 기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이 안에선 어떤 모습의 신수님이 튀어나오는 거지? 이 두껍고 뾰족뾰족한 겉면 때문에 제일 늦게 탄생하시는 걸까? 

블리스가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조금 졸렸다. 회중시계를 보아하니 햇빛이 나른하게 비추는 11시 경이었다. 브리타니아에 있었다면 티 타임을 가졌을 텐데. 하암…. 아직 피로가 남아 있는 몸이 수면을 외쳤다. (비단 피곤하지 않더라도 블리스는 잠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홍차 같은 걸 마셔야 잠이 깨는데. 블리스가 눈을 깜빡였다. 차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리스 또한 브리타니아 인이었기 때문에 베다국 산 홍차를 꼭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버릇이 들어 있었다. 

타르트 한 조각이랑, 밀크티를 마시면 좋을 텐데. 곧 점심을 먹기 때문에 주지 않는다면, 애프터눈 티라도 먹으면 좋겠다. 블리스의 눈이 점점 감기고… 감기고… 점심시간이 되어 바구니에 쌓인 음식들을 받아 기도실에서 먹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신부들과 신부들이 사라지자마자 먀욱 먀욱 삐약 삐약 울어 대는 신수들… 그래서 결국 쩔쩔매며 현수는 용을 목에 감고 가기까지 했다….

해가 완전히 졌다. 신부들은 제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알에서 신수들이 깨어났으니 이제 방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었다. 더 이상 기도실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교황도 중간에 들러 탄생을 확인했고 그들을 축복했다. 

하지만 블리스는… 블리스의 검은색 알은… 깨질 기미가 없었다. 

블리스는 당황했다. 신관들도 당황했다.

“분명 오늘 깨어나신다고 했는데….”

“예외 없이… 명계의 왕께서도….”

신관들이 수군거렸다. 블리스는 어쩐지 눈치를 보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어쩐지 억울하고 불안했다. 

‘내가 신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난 신부가 아닌 걸까? 아니면 뭔가 잘못됐나? 내가 늦게 와서…?’ 

블리스가 조금 울상을 지었다. 알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교황이 블리스의 앞까지 다가왔다. 일어날까? 일어나서 말할까?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역시 나는 신부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사천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왔는데… 내가 신수 님이 무서울 것 같다고 해서 그런 걸까? 

“……저어….”

블리스가 우물쭈물 말했다. 

“신수 님이 태어나질 않으세요…. 오, 오늘 태어나실까요…? 제가 여기 계속 있으면….”

블리스의 모습을, 제 신수들을 안은 신부들이 빤히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블리스 님. 신수 님은 반드시 깨어나실 겁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요, 당신이 신부시니까요. 신탁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곳에만 있느라 많이 답답하고 힘드셨죠?”

그러나 교황은 뜻밖에도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만 방으로 들어가서 쉬셔도 좋습니다. 단, 알을 꼭 가지고 가 주세요.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둬 주세요. 어떤 신수님들은, 조금 늦게 태어나시기도 합니다만, 확실한 건 신부님과 함께 있다 보면 반드시 깨어나실 겁니다.”

교황의 말에 블리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블리스는 알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