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4화: Chapter 1. 탄생 04

“…그런데, 여러분은 심장 소리 같은 게… 들리지 않나요?”

알을 품듯이 끌어안고 있던 의현이 물었다. 다른 알들보다 크기가 큰데도 의현은 불편하지 않은 듯했다.

“전혀요….” 

블리스가 말했다. 현수도 고개를 저었다. 

“에이, 다들 보고만 있으니까 모르죠.” 

사람 좋게 말한 의현이 알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만지고 있으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니까요. 뭔가 신기해요.”

의현이 웃으며 알을 내려다보았다. 알을 받은 지 1시간째였다.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기도실은 조용했다. 더군다나 햇빛도 잘 들어오는 공간이다 보니 블리스는 금방 나른해졌다. 어색한 사이의 세 신부는 서로 눈치만 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의현과 현수는 동대륙어로 대화했었다. 블리스는 자기만 빼놓고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까 ‘조금’ 궁금했다. 

그렇다면 살짝 조금 전으로 돌아가, 현수와 의현의 대화를 엿들어 보자. 

*편의상 조선신명조는 동대륙어입니다. 

“갑자기 신부라니, 현수 씨도 놀라셨나요?”

“…네,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왕자님.

자기보다 (추정 상) 나이가 많은 현수가 깍듯하게 말하자, 의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동대륙인이길래 혹시 한나라 사람인가 했는데, 정말 동포였군요. 서대륙 식으로 복장을 갖추고 있길래 긴가민가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복장은… 제가 서대륙에서 유학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양학을 배우고 있던 학도라… 이제는 신부가 되어 모두 끝났지만요.”

“아아, 그런 사정이.”

현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의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바글바글한 동대륙인 중에, 항구도시 사람들을 죄 놔두고 당신이 용왕의 신부가 될 테니, 양의洋醫*가 되는 것보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 않나요? 그럼 그때 다시 양학을 배우러 가면 되지요.” 

*양의洋醫 : 한의사의 반대말.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 

현수가 의현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이 자는 왕자라 서민이 꿈을 이룬다는 것을 모른다. 오만한 태도인 것을 보니 역시 왕족이고, 역시… 차기 왕 감이라던 둘째 왕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왕의 신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서대륙으로 유학을 하러 가며, 밤을 새워 가며 레지던트를 하고 의학을 배운단 말인가? 신부로서의 할 일과, 실천할 수 없는 의학을 생각하니 현수의 마음이 아파 왔다. 

실제로, 왕을 노리는 의현은 신수라는 막강한 힘까지 얻으면 더욱더 차기 왕 자리를 굳히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알을 받는 것도 신부가 되는 것도 긍정적인 처지였다. 혼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슬프지만, 후손이야 후궁을 들이거나 조카를 데려오면 된다. 

의현은 그런 현수의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로 말했다. 

“그리고, 왕자라고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는 어차피 우리 모두 다 같은 신부 처지잖아요. 저 서대륙인 도련님에게도 제가 왕자라고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의현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의현이 한쪽 손으로 펼쳐 입가를 가리고 현수에게 속삭였다.

“도련님이 언제 저를 왕자인가 알아볼지 궁금하거든요. 동대륙인들은 다들 내가 누군지 알잖아요. 이렇게 왕족이 아닌 취급을 받는 것도 꽤 신선해서요. 부탁합니다. 앞으로 왕자님이란 칭호는 금지에요. 나도 편하게 부를 테니까요.” 

현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의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렇듯 의현이 왕자인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블리스는 제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보면, 머릿속에서 여러 음악이 흘러갔다. 백여 년 전, 루카 공화국**의 유명한 작곡가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사계라거나.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루카 공화국 : 정식 명칭은 레조 모데나 루카 공화국. 서대륙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반도. 

이 알에서 도대체 어떤 모양의 신수가 튀어나올까? 솔직히 말해서, 블리스는 신수의 외관이 양서류나 파충류는 아니길 바랐다. 특히 징그러운 모습이라면 비명을 지를지도 몰랐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신수는 신부를 무조건 사랑한다지만, 신부도 신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신수를 사랑하지 않은 신부가 많았을까?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도 무수히 많았으니까. 옛이야기 속에서 사자 신수는 자신을 무서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신부를 위해 이빨을 뽑고, 발톱을 뽑는다. 결국 약해진 신수는 왕국을 향한 침입에서 신부를 지킬 수 없었고 결국 신부를 지키다 죽는 꼴이 된다. 

의현은 계속 알을 껴안고 있다. 그러더니 공용어로 말을 한다. 즉, 블리스에게도 하는 말이다. 

“역시 두근거려요. 심장 소리에요.”

“…심장 소리라니. 정말 신수들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거군요.”

어느새 현수도 알에 한 손을 얹고 있다. 조금 어정쩡한 자세다. 

“제 알에서는 심장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지는 않습니다만….”

그리고 블리스를 쳐다보았다. 의현도 블리스를 쳐다보았다. 마치 왜 알에 손을 올리지 않느냐는 듯 쳐다보는 모습에 블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다들 저렇게 말하니 조금 궁금했다. 

“……진짜 심장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도 까맣고 뾰족뾰족한 알로 손을 뻗었다. 

두근!

“꺅!”

거센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깜짝 놀란 블리스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의현이 하하 웃었다. 뒤이어 부끄러움에 블리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엄청나게 세게, 두, 두근거렸어요.”

의현이 웃으며 말했다.

“봐요, 진짜죠? 두근두근거려요. 난 옛날에 달걀을 낳고 품는 암탉들이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 이렇게 두근거림이 느껴져서 그랬나 봐요. 병아리들한테 빨리 나오라고, 암탉들도 알을 그렇게 열심히 품었던 거죠.”

의현이 발랄하게 말했다. 현수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품에 안을 생각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암탉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대고만 있었으니까. 조개껍데기같이 반짝거리는 알은 따뜻하기보다 시원했다. 

“뜨끈뜨끈해라~.”

의현의 알은 뜨거운 모양이었다. 블리스도 엉거주춤 손을 대고 있었다.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윗부분은 차가운데 아랫부분은 뜨거운 알이었다.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가 밑에 가라앉아 있는 걸까? 블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도실에서 하염없이 알을 바라보며 2시간이 다 돼가던 그때, 

“어?”

의현이 깜짝 놀라 상체를 알에서 뗐다. 소리에 현수와 블리스의 시선도 자연스레 의현에게 향했다. 

“움직였다… 정말 움직였어!”

의현이 혼잣말했다. 거대한 알이 정말로 흔들, 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와… 신기해.’

블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수 또한 의현의 알을 보았다.

알은 오뚝이처럼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점점 알은 격렬하게 움직였다. 안쪽에서 빠각, 빠각 하고 알이 부서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블리스는 침 삼키는 것도 잊은 채로 멍하니 알을 바라봤다. 비단 블리스 뿐만이 아니라 기도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죄다 두 번째 알이 깨지는 것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알이… 깨어나려나 봐.”

의현 또한 눈을 떼지 못했다. 빙글빙글 돌듯이 흔들리던 알의 윗부분에 마침내 금이 간다. 그리고 빠각 소리가 들리며 껍질 조각이 떨어졌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껍질 조각이 더 많이 떨어진다. 

꺅!

“…?”

블리스가 이상한 울음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리? 병아리? 그런 울음소리였는데…. 새인가 싶어서 창문을 바라보던 현수와 블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현수 또한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먀악!”

목이 쉰 것 같은 병아리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빠각, 알이 완전히 부서지기 시작한다. 작은 조각으로 부서진 알껍데기가 바구니 바닥에 깔린다. 의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깍! 먀아악!”

알껍데기가 부서지고 드러난 것은 연분홍색 호랑이 새끼였다. 이마며 몸의 젖어 있는 털에 아직 껍데기들이 몇 개 붙어 있다. 의현이 부드럽게 몸에 붙은 알껍데기를 떼어 주었다. 

호랑이 새끼가 먀욱 먀욱 울었다. 우렁차게 짖는 고양이 울음소리 갖기도 했다. 호랑이는, 이빨도 아직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갓 태어난 호랑이보다는 커 보이기도 하고. 알 크기가 원체 컸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눈도 뜨지 못한 모습에 의현이 바구니 안의 천을 들어 눈에 붙은 양수를 닦아 주었다. 

“먀우욱! 먁!”

앉아 있던 호랑이 새끼가 휘청거린다.

신, 신수 님. 신수 님이 저렇게 작고 귀엽고 눈에 띄는 색의 호랑이?! 

비단 블리스 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너구나.”

의현이 중얼거리며 새끼의 몸을 닦는다.  천이 아니면 제 옷소매로라도. 호랑이는 먁먁대며(여전히, 목이 쉰 고양이 같았다.) 바들바들거렸고, 의현의 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먀욱. 먀우욱….

점점 우는 소리가 조그마해졌다. 아기 호랑이는 의현의 품에 들어가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원래 눈을 못 떠서 잠든 건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됐다.)

“음… 신수님이… 태어나셨네요.”

의현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호랑이가 일어날까 봐 속닥거리는 것이다. 

“그럼… 데리고 제 방으로 가면 될까요?”

“예. 조심스럽게 데리고 가시면 저희가 신수 님을 돌보겠습니다.”

아슈레가 대답했다.

‘어, 아슈레가 있었네? 기척이 없어 몰랐어.’

블리스가 생각했다. 다들 후드를 쓰고 있으니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아, 그런 거라면 제가 해도 돼요.”

의현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아기 사슴을 키운 적도 있고…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것 같아서. 그나저나, 우리 아기 신수 님은 뭘 먹지~? 일단 깰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앉아 있다 갈게요.”

동대륙 어조가 섞인 의현의 공통어에서 어쩐지 장난스러운 보호자 느낌이 났다. 적어도 능숙해 보였다. 블리스는 호랑이를 보는 순간 귀엽다기보다는, 이 알에서도 그런 게 태어나면 어떻게 돌볼지 걱정했는데…. 물론 조금 귀엽긴 했다. 

“어.”

그때, 현수 또한 깜짝 놀라며 알에서 손을 뗐다.

“어…. 이거… 알이, 알이 움직였어.”

그가 당황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블리스가 목을 길게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