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가자고 한 제 말 때문이었을까요? 유리는 제 표정을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저를 이끌고―아예 제 허리를 잡아 바이크 뒤에 턱, 앉혔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바이크를 몰았던 것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저는 자기부상 바이크가 이 정도 속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마치 빛의 속도로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상당히 먼 거리를 30분도 안 돼서 주파하고서는, 유리는 햇빛이 먼지를 투과하는, 그러나 잘 정돈된 연습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연습실은 마치 시간의 흔적을 빗겨나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때 그 시간에 박제된 것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보면대와 메트로놈, 반주를 연주하는 피아노는 모두 비싼 제품들입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여러 앨범과 악보들. 거대한 오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리스 플레쳐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고, 부모님도 부자였습니다. 영국 귀족의 후예였으니까요.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
저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지르며 방 가운데로 달려갔습니다.
보면대 옆의 작은 탁상 위에는 바이올린 케이스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의 바이올린. 제가 연주하던 바이올린. 제가 그토록 그리던 바이올린.
순간 저는 유리가 있다는 것도 잊고 천천히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습니다. 제가 쓰던 바이올린은 오랜 시간 누군가 연주하지 않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관리를 맡긴 것이 분명합니다. 소중한 바이올린일 테니까요.
바이올린을 한 번 쓸어봅니다. 손가락 끝과 바이올린 몸통의 표면이 천천히 마찰하며 느껴지는 이 촉감마저도 제게는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스으윽 하고 들리는 이 소리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파장을 만들며 코어를 요동치게 만듭니다.
“유리.” 저는 어째서인지 먹먹한 목소리로 유리를 부르고야 맙니다.
“저, 연주해도 될까요.”
그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블리스, 그 바이올린은 네 거야. 그래,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한테는 그걸 허락 해주고 말 권리가 없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바이올린을 손에 집었습니다. 유리는 한 쪽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저를 뚫어지게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손이 떨렸습니다. 기체 이상이 아닙니다. 코어가 요동치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네, 연주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저는 코어를 진정시키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익숙하게 활을 쥡니다.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현을 짚습니다.
베토벤의, 차이콥스키의, 멘델스존의, 모차르트의, 바흐의, 비발디의…….
그 모든, 한 편의 시와 같은 선율들.
그리워했고 사랑하는 나의 음악, 나의 연주, 내가 만들어진 목적.
코어가 두근두근 덜컹거립니다. 어쩌면 손이 삐끗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즐겁습니다.
반주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제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들리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저는 연주를 계속합니다.
유리는 제 앞에 서서 그 모든 곡을 감상하는 단 한 명의 관객입니다.
제가 연주하는 세계, 그리고 저를 마주하는 단 하나의 세계― 유리.
세계와 세계가 충돌합니다.
아름다운 충돌입니다.
거센 충격파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땠어요, 유리? 제 연주.”
막 연습실을 나온 직후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를 느끼며, 유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유리는 제 쪽은 쳐다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리?” 하고 한 번 더 부르고 나서야,
“아, 미안. 뭐랬지?”
하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충격입니다. 기운이 빠집니다. ……제 연주가 그렇게나 별로였나요?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제가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리는 정말 음악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남자인 걸까요? 이럴 수가, 억양은 러시아면서…….
“제……. 연주요…….”
“좋았어.”
바로 대답이 튀어나옵니다.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는 담백한 대답입니다. 제 시선이 느껴졌는지 다시 제 쪽을 흘끔 본 유리가 몇 마디를 덧붙입니다.
“더없이 좋았어. 감히 나 같은 게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진심이야, 내가……. 블리스 플레쳐가 직접 연주하는 곡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저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기록된 연주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연주한 것이기에, 다시 들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만요.
충돌하며 생긴 흉터가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 기분 좋은 흉터를 되새김질하며 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처음에 저는 유리의 등을 보고 걸었지만, 이제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유리는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습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요.
왜인지 인적 적은 길입니다.
유리는 점점 제 곁에 바짝 붙어서 저를 호위하듯이 굴었는데요, 며칠 전에 보디가드였다는 말을 들었으니 어쩌면 버릇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리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아, 물론, 유리는 언제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긴 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요. 인상을 팍 찌푸리고, 근처로 연초 향이 날 것 같은, 22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20세기의 흑백으로 된 마피아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입니다.
이제 그는 총을 꺼내 들고 주위를 경계하듯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말, 마피아 같네요. 보디가드가 아니라요. 불법적인 일에 종사할 것 같이 생겼다고 하면, 화를 내겠죠?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기척이라도 느껴진 걸까요? 유리는 한팔로 제 어깨를 잡아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동시에 다른 팔로 어딘가를 조준했습니다.
탕―.
하고 큰 소리가 들립니다. 권총입니다. 소음기를 달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각에 예민한 저는 미세하게 귀를 찌푸리고 맙니다. 귀에서 삐―하고 이명이 울립니다. 원래 소리에 예민하게 설계된 음악용 개체라서, 갑작스러운 큰 소리는 연산 능력과 소리 인지 기능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탓입니다.
유리는 어딘가를 노려보며, 욕설을 중얼거리더니, 집중하며 총을 쏘고, 이내 제 손목을 잡고 뛰었습니다. 몸으로는 저를 막으면서요.
그가 걱정되어서 올려다보면, 그는 먼 곳을 보고 있습니다. 축소되어 한 지점을 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는, 마치 사냥을 하는 포식자처럼 두려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온몸의 근육이 긴장 상태가 되어, 힘이 바짝 들어가 있습니다. 절 단단히 붙잡고 끌어안은 팔근육의 단단함마저 느껴질 듯합니다. 턱선이 도드라져서―유리는 다시 저는 알아듣지 못하는 러시아어로 된 욕을 중얼거렸습니다―목에는 힘줄이 돋아납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저는 순간 그것을 만져 보고 싶다고 느낍니다.
유리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겁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유리는 제게 당부했습니다.
“블리스. 내 곁에서 절대 벗어나지 마. 바짝 붙어.” 그리고는 총을 장전합니다.
“저 새끼들은 널 노리고 있다. 내가 방패막이 될 테니까.”
유리는 다시 어딘가를 향해서 총을 쏴 댔습니다. 귓가에서 들린 총소리에 이제야 귀가 적응했네요. 저는 유리가 쏘는 총소리 말고도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서히 땅을 내려다보면, 땅이 움푹 패여 있는 곳이 보입니다. 누군가가 멀리서 총을 쏜 겁니다. 무언가가 굴러옵니다. 연막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왜 저를 노리는 걸까요?
그저 노래 기계일 뿐인 저를――…….
귓가가 멍합니다. 총소리,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부서지고, 절규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서 저의 아름다운 선율은 잊혀졌습니다.
무슨 약을 했는지는 몰라도 유리가 총을 대여섯 발은 쐈는데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좀비처럼 다가오는 인간이며, 유리에게 달려드는 강철 팔의 불법개조인간들―…….
“블리스.”
누군가 제 팔을 잡고 가려고 합니다. 다급하게 제 앞을 가로막는 유리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가슴에 정확하게 찌릅니다. 유리가 칼을 빼면, 기묘하게도 피는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푸른 액체가 비산할 뿐입니다.
“블리스!”
아, 멍하니 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와 같은 안드로이드가― 저를 데려가기 위해 고용되었을 안드로이드가 죽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데, 죽지 않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은―.
저는 유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블리스. 내 말, 잘 들어.”
유리는 단단히 굳은 얼굴로 말합니다. 그리고는 제 손에 아주 작은 무언가를 쥐여줍니다.
“내가 어떤 꼴이 되더라도 무시하고 도망가. 절대 구하지 마. 난 안 죽어. 절대 안 죽으니까……. 저 녀석들에게 잡히지 마. 지금 준 건 나만 알 수 있는 수신기다. 그걸 계속 들고 있으면 어디에 있던 내가 데리러 갈 거야.”
허벅지에서 살짝 피를 흘리며, 온통 흐트러진 모습으로, 몸에는 피며 부동액이며 먼지에 뇌수까지 묻히고는, 유리는 살짝 웃습니다.
“난 절대 너보다 먼저 죽지 않아. 걱정하지 말고, 이제, 저쪽으로― 달려!”
코어가 다시금 쿵,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몸통을 뚫고 나올 것만 같습니다. 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유리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유리, 당신의 세계는 용암이 들끓는 지옥이군요.
저와 당신이 충돌한 자리에
아직도 뜨겁게 불타오르는 화상 자국이 남아 버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