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6화: 6화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적한 곳에 있던 연습실에서 달리고 또 달려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저는 이런 격한 운동은 상정하지 않은 기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기계라서 다행입니다. 인간 블리스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납치당할 상황에서 도망쳤으니, 다리 관절의 부품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사치겠지요.

꽉 쥔 손에는 유리가 준 자그마한 수신기가 있습니다. 걱정이 되어 뒤를 돌아봤습니다. 유리, 유리는 잘 있을까요? 다치진 않았을까요. 그의 허벅지에서 흐르던 한 줄기 핏자국이 온몸으로 퍼졌을까봐……. 하지만 이미 무수한 인파로 제가 뚫고 온 길은 막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를 왜 납치하려고 들었던 걸까요?

물론 아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는 블리스 플레쳐를 모델로 제작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안드로이드.

AMS-BLESS_FLETCHER_01 이니까요.

이 세상에는 진귀하고 희귀한 것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이 있고요. 저를 발매한 회사는 저와 같은 음악가 모델을 내기로 유명한데, 블리스 플레쳐는 저 하나뿐입니다.

블리스 플레쳐처럼 사고하고, 말하고, 연주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오직 저뿐이라는 겁니다. 그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줄 알았는데, 인간 블리스 플레쳐가 죽은 이후로는 안드로이드인 저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여하튼 그런 이유로, 아마도 저를 노리고 있는 것이겠죠. 일단 저를 가져다가 제 데이터를 모두 빼내면 그 다음에는 저와 같은 모델을 몇 개고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로를 관리하는 작은 로봇이 다가와 안드로이드는 이곳에 멈춰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가까운 안드로이드 보관함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통보했습니다.

저는 그 작은 로봇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렇다면 여기서 가까운 안드로이드 보관함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작은 로봇은 땅으로부터 약 1m 정도 뜬 상태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주인이 있고, 잘 관리된 안드로이드들이 보관함에 주르륵 서 있었습니다.

저도 위화감 없이 그사이에 껴 섰습니다. 보관함의 안드로이드들은 귀중한 재산입니다.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방비가 되어 있죠. 더군다나 이곳에는 보는 눈도 많습니다. 어쩌면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이 제게도 유리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흘끔 제 주변의 다른 안드로이드들을 훑어봤습니다. 그들은 전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사실, 표정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리가 가슴을 찔러 죽인, 그러니까 코어를 파괴한 그 안드로이드를 떠올렸습니다. 그 안드로이드도 표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코어를 파괴할 때 어쩌면 허망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습니다. 저의 착각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여러 상상이 불협화음처럼 부딪히고 있습니다예컨대 안드로이드에 불과한 제가 그렇게 산산조각나는 상상입니다.

감히 가지면 안 되는 오만에서 나온 절망감입니다. 태생부터가 불확정성인 인간과 그것을 모방한 저는 고유성에 있어서 수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하지만 그 정도 자만심이야 가질 수도 있지 않냐고 투덜거려 봅니다. 이제는 인간도 복제가 되는데 말이에요.

인간, 유리. 그래요, 저는 유리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결국― 수많은 쓸데없는 상념으로 유리 생각을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리가 걱정됩니다.

유리는 인간입니다.

 

저는 한낱 보잘것없는 안드로이드에 불과하지만 유리는 인간이에요. 제 두개골과 유리의 두개골이 맞부딪히면 유리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날 겁니다. 유리는 유리처럼 연약한 인간인걸요. 저야 코어가 산산조각나더라도 기억 모듈만 멀쩡하다면 어찌저찌 다시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심하게 다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요. 복제 인간이 해도 그렇습니다. 뇌가 망가지면 기억을 복구할 수 있을까요? 저와 카페에 가고, 저와 호수에 가고, 제 연주를 들어 주던 그 유리의 기억이 없는 이상 제가 마주하는 것은 그저―

가짜일 뿐.

그렇게 생각한 제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녹이 낀 것처럼 끼익거리는 느낌입니다. 지금 바이올린이 있었더라면 우중충한 절망의 곡을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블리스.”

 

환청일까요? 문득 다정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유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저는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습니다.

 

블리스, 나야.”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제 시각 장치에 이상은 없거든요.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건 유리였습니다. 제가 아는, 그 유리요. 심지어, 세상에나. 너무나 멀쩡해 보입니다. 인간 유리는 육체 수복 기능이 있었던 걸까요?

하지만 방금까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수많은 로봇이 유리 하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죠? 다친 곳도 하나 없이, 갓 일어나서 깨끗한 옷을 걸치고 저와 데이트나 즐기기 위해 나온 남자처럼요.

 

처분하지 않은 여분이 있어서 다행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유리는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잠을 잘못 자서 목이 뻐근한 것 같아 보여요.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며 오는 유리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목소리의 톤에서 저는 낮의 유리가 아닌 밤의 유리를 느꼈습니다.

 

유리?”

 

그래서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유리가 맞는지요. 그는 천천히 안드로이드 보관 장소까지 다가와서, 저를 한 번 보고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다정한 표정, 한 가닥도 흐트러지지 않은 올린 머리,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피부부터 멀쩡하다 못해 새것 같은 옷까지…. 제가 걱정할까 봐 씻고 옷매무새까지 정리하고 온 건 아닐 겁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저는 멍하니 유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 블리스.”

 

그렇게 말하며 유리는 제 뺨에 손을 올렸습니다.

 

여기에 서 있을 필요 없어. 가자, 내일은 우리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잖아. 내가 널 데려온 이유.”

 

그리고 저와 눈을 마주합니다. 슬픔과 사랑이 가득 담긴 어찌할 줄 모르는 눈동자.

 

마지막 밤을 즐겨야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릅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연산을 설명하기에는 복잡하니까요. 다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저는 제 앞에 있는 유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제 손에 수신기를 쥐여주던 유리와는 다르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당신은…… 유리인가요?”


그래서 저는 유리를― 제 노래를 들어 주고, 거칠 정도로 바이크를 몰고, 담배를 피는 퉁명스러운 남자를 떠올리면서 물었습니다.

제 질문에 제 앞의 유리는 한 차례 웃었습니다. 하하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이 웃어 댑니다. 웃다가 눈에 눈물을 매달고는 저를 쳐다봅니다. 어쩐지 쓸쓸한 목소리로 유리는 말합니다.

 

그럼 내가 유리 살티코프가 아니면 누구겠어. 블리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는 나야.”

 

돌아가자고 내민 손을 저는 아직 잡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유리일까요? 밤의 유리가 돌아왔을 뿐인 걸까요. 저는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고, 이 손을 잡고 따라가면 저는 후회하지 않을까요?

망설이며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향해 유리는 씩 웃어 보입니다.

그 미소는, 아마도 저의 유리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여유를 가지게 된다면 보일 미소 같았습니다. 마치 미래를 엿본 것 같은 착각에 저는 입을 살짝 벌립니다. 저도 모르게 손을 올리려던 찰나―

 

, 블리스. 이제 돌아가――

 

   

탕―

―――――――
―퍽
 

 

 

하고 순간 붉은 점액질의 무언가가 제 얼굴에 튀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눈을 감지 못했습니다. 제 앞에 있던 유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유리의 든든한 몸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머리가―…… 머리가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주위의 안드로이드들이 흘끔대며 이곳을 쳐다봅니다. 그것은 안드로이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터지고 뭉개 제 본래 모습을 찾지 못한 머리의 잔해물들이 이곳저곳 사방에 튀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에서 바로 마주하던 제 얼굴에도 수많은 피와 점액과 뇌수와 뇌였던 것과 안구의 잔해물과…… 차라리 부동액이었으면 좋겠는,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성분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명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멍하니, 저는 유리였던 것을 쳐다봅니다.

뇌가― 뇌가 망가졌으니까 이제 수복할 수 없는 건가요, 유리, 유리. 당신이 다치지 않기를……. 죽지 않기를 그렇게나 빌었는데. 손에서 떨어진 수신기가 바닥에서 튕겨 대지만 신경 쓸 가치도 없습니다.


, 유리―….”

 

한참이나 지나서 간신히 그를 불렀을 때,

 

 

블리스!”

 

헉헉대는 숨소리와 함께 저를 찾는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방금 전까지 똑같이 들리던 바로 그 유리의 목소리였습니다. 저 멀리 인파 한가운데에서 다급하게 다가오고 있는 유리가 보입니다.

비켜, 시발!” 그렇게 욕지거리를 해 대며 죽은 유리……의 몸 가까이에서 멈춰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오고 있어요.

올린 머리는 잔뜩 흐트러져서 엉망진창이고,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얼굴이며, 온몸 여기저기에 묻은 다른 이의 부산물들과 잔뜩 찢어지고 먼지가 묻은 옷을 입고 있는 나의 유리요.

 

블리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제 앞에 선 유리가 저를 다시금 불렀습니다.

 

나 안 죽었어.”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했어요.

너덜너덜한 유리는, 안도하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 부끄러운지 황급히 갈무리하고는, , 그새 이 새끼를 따라가려고 든 거야?”라며 제게 화난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습니다.

 

저는, 저는요.

이 앞에 죽은 유리를 두고, 살아있는 이 유리를 보고, 왜인지 울 것 같았습니다. 왜 울 것 같은지 연산 과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어쩌면 오류일지도 모르죠. 오래된 로봇은 대개 그러니까요.

동시에― 웃음이 튀어나왔어요. 유리가 마치 자기 자신을 질투하는 것 같잖아요. 그건 정말로 유리였다고요.

 

아무리 이것도 나여도 그렇지. 수신기 가지고 잘 숨어 있으랬지, 이딴…… 이딴…….”

하지만 그것도 유리라고, 지금 말했잖아요.”

 

안도하는 웃음으로 저는 유리의 손을 덥썩 붙잡았습니다.

검은 장갑에는 온갖 것들이 다 묻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다행이에요. 유리.”

 

뇌가 터진 것이 당신이 아니라서. 머리가 날아간 것이 당신이 아니라서.

저는 그렇게 안심하며 유리를 끌어안았습니다.

유리가 잠시 뒤로 주춤하더니, ―그래도 잘 도망갔네. 토끼처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저를 마주 안아 줍니다.

따스한 인간의 품입니다. 심장 소리도 멀쩡하고요.

 

가슴팍에 머리를 부벼 봅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요.